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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묵상 그리고 삶

다시 일어서다 : 예레미야애가 3장 22-23절 (절망 속 고백, 아침의 은혜, 헤세드)

마하나임220 2026. 10. 12. 17:29

목차


    예레미야애가 3장 22-23절 말씀 이미지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일어나고 싶지 않은 날이 있습니다. 어제 무너진 일이 오늘도 그대로 있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시기가 꽤 길었습니다. 기도를 해도 상황은 그대로였고, "하나님, 정말 계십니까"라는 질문을 속으로 삼킨 날이 많았습니다. 그때 붙든 말씀이 예레미야애가 3장 22-23절입니다. 처음엔 너무 익숙해서 그냥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고 나서, 전혀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예레미야애가 3:22-23, 개역개정)

     

    절망이 가장 깊은 자리에서 나온 고백


    예레미야애가는 기원전 586년,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을 불태운 직후에 쓰인 책입니다. 히브리 원어로는 '에이카(Eikha)'라고 부르는데, 이는 "어찌하여"라는 탄식의 첫 마디에서 온 제목입니다. 쉽게 말해 이 책 전체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라는 절규로 이루어진 슬픔의 기록입니다.

    책은 총 다섯 장인데, 3장이 정중앙에 있고 오늘 본문인 22-23절은 그 3장 한가운데쯤에 놓여 있습니다. 가장 깊은 슬픔의 한복판에 가장 밝은 고백이 박혀 있는 구조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앙 고백은 상황이 회복된 뒤에 드리는 감사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고백은 성전이 여전히 잿더미인 상태에서, 백성이 여전히 포로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이 구조 하나가 설교 한 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고 느꼈습니다.

    • 예레미야애가 1~4장은 히브리 알파벳 22자 순서를 따르는 애크로스틱(acrostic) 구조로 쓰였습니다. 각 절이나 연의 첫 글자가 알파벳 순서를 따르는 시 형식으로, 고통을 언어로 정돈하려는 의지를 담습니다. 5장도 22절이지만 알파벳 순서는 따르지 않습니다.
    • 3장은 66절로 구성되어 전체 책에서 가장 길며, 각 히브리 알파벳마다 세 절씩 배정됩니다.
    • 22-23절에는 헤세드(인자), 라하밈(긍휼), 에무나(성실하심) 세 핵심 단어가 함께 등장합니다.
    요약: 이 고백은 상황이 좋아진 뒤의 감사가 아니라, 무너진 현실 한가운데서 터져 나온 말씀이라는 점에서 출발합니다.

    그런 시기에 이 말씀을 다시 펼쳤습니다. 읽을수록 놀라웠던 건 말씀의 내용보다 그 말씀이 놓인 자리였습니다.

    그런 시기에 이 말씀을 다시 펼쳤습니다. 읽을수록 놀라웠던 건 말씀의 내용보다 그 말씀이 놓인 자리였습니다.

    그런 시기에 이 말씀을 다시 펼쳤습니다. 읽을수록 놀라웠던 건 말씀의 내용보다 그 말씀이 놓인 자리였습니다.

     

    아침마다 새롭다는 말의 진짜 의미

    저는 한동안 "예전에 받은 은혜"를 꺼내 쓰며 버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의 은혜로는 오늘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야 깨달은 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한꺼번에 쌓아 주시는 분이 아니라, 매일 아침 그날 필요한 만큼 새로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의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에서 '이것들'은 22절의 인자와 긍휼을 가리킵니다. 인자는 히브리어 헤세드(Hesed)입니다. 헤세드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언약에 근거해 상대가 실패해도 거두지 않는 신실한 사랑을 뜻합니다. 긍휼은 라하밈(Rahamim)인데, 어머니의 태를 뜻하는 레헴(Rehem)과 같은 어근에서 나온 말입니다. 자기 몸에서 난 자식을 향해 속이 끓어오르는 듯한 깊은 연민입니다. 시인은 이 두 가지가 바닥나지 않고 매일 아침 새로 주어진다고 고백합니다.

    저도 처음엔 "아침마다 새롭다"는 말을 매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다시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애가의 시인에게 다음 날 아침은 여전히 폐허였습니다. 새로운 것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헤세드였습니다. 저도 그 뒤로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오늘 아침 몫의 은혜를 구합니다"라고 짧게 기도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몇 달을 버틸 힘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살아 낼 만큼만 구하는 기도입니다.

    또 하나의 개념이 있습니다. 본문 23절의 "주의 성실하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무나(Emunah)입니다. 에무나는 흔히 "믿음"으로 번역되지만, 원래 의미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 신뢰할 수 있는 일관성"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에무나란 인간의 믿음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 즉 그분이 본래 신실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제 마음이 흔들려도 그분의 에무나는 바뀌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요약: 헤세드와 에무나, 두 개념이 보여 주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가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무너진 자리가 다시 시작하는 자리가 되는 이유

    폭풍우가 지나간 숲을 생각해 봅니다. 굵은 가지가 부러지고, 잎이 떨어지고, 어떤 나무는 쓰러집니다. 그런데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은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새잎을 틔웁니다. 새잎이 돋아나는 것은 폭풍이 없었던 것처럼 됐다는 뜻이 아닙니다. 폭풍을 견뎌 낸 나무가 다시 생명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한참 멈춰 있었습니다. 저는 한때 믿음이 강하면 고난을 덜 겪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애가의 시인은 분명히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고, 그럼에도 가장 참담한 현실 앞에 섰습니다. 유다 백성이 심판을 받은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헤세드는 거두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점이 제게 가장 크게 와 닿은 부분입니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애쓰고, 책임을 다하려고 하고, 내일을 준비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무겁습니다. 때로는 제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지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그때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에도 삶은 계속되었고 다시 시작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나 큰 기적의 모습으로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게 하는 힘, 다시 가족을 위해 살아가게 하는 마음, 잘못을 깨닫고 새로운 선택을 하게 하는 것, 그것도 은혜의 모습입니다. 제 경험상 은혜는 드라마틱한 방식보다 그런 조용한 형태로 더 자주 찾아왔습니다.

    요약: 넘어진 자리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헤세드의 실제 작동 방식입니다.

     

    나눔 질문

    Q. 예레미야애가 3장 22-23절은 어떤 상황에서 쓰인 말씀인가요?

    A. 기원전 586년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을 파괴한 직후, 폐허 한가운데서 쓰인 탄식의 책 한복판에 놓인 구절입니다. 흔히 희망의 말씀으로 인용되지만, 실제로는 상황이 전혀 회복되지 않은 자리에서 나온 고백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맥락을 알고 읽으면 이 구절의 무게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Q. 헤세드(Hesed)가 일반적인 사랑이나 자비와 다른 점이 뭔가요?

    A. 일반적으로 자비나 사랑이라고 하면 감정적 호감에 가까운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그런데 헤세드는 언약, 즉 관계와 약속에 근거한 한결같은 신실함입니다. 제 상태가 좋을 때든 나쁠 때든 변하지 않는 돌보심이라는 점에서,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적 호의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Q. "아침마다 새롭다"는 말이 매일 상황이 나아진다는 뜻인가요?

    A. 그렇게 읽히기 쉬운 구절이지만, 제 경험상 실제 의미는 다릅니다. 애가의 시인에게 다음 날 아침도 폐허는 그대로였습니다. 새로워지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헤세드입니다. 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버티려 하면 금방 고갈됩니다. 오늘 하루 몫의 은혜를 오늘 아침에 구하는 것이 이 구절의 실제 적용입니다.

     

    Q. 고난이 계속될 때 이 말씀을 어떻게 붙들 수 있나요?

    A. 저는 상황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가 감사하려고 했을 때 가장 오래 기다렸습니다. 예레미야애가의 방식은 반대입니다. 회복 전에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 낼 힘만 구하고, 앞날을 다 알지 못해도 지금 해야 할 일을 감당하는 것, 그것이 이 말씀이 가르쳐 주는 믿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이 말씀을 처음 읽었을 때와 배경을 알고 읽었을 때는 체감이 전혀 달랐습니다. 익숙한 위로의 구절이 아니라, 가장 처참한 현실 한복판에서 건져 올린 고백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가볍게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상황이 좋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상황이 그대로인데도 "그래도 우리가 진멸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헤세드에 기댄 믿음의 모습입니다.

    오늘 힘든 자리에 있다면, 큰 기적을 기다리기 전에 오늘 아침 몫의 은혜를 먼저 구해 보시길 권합니다. 제가 그 짧은 기도로 하루를 버텨 낸 날이 꽤 많았습니다. 무너진 자리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오늘 하루 붙드시면 좋겠습니다.

     



    참고자료
    ·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bskorea.or.kr)
    · 『IVP 성경배경주석: 구약』, 예레미야애가 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