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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졌던 그자리 (고난 1편)
30년 가까이 한 일만 해온 사람이 갑자기 그 일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요. 새 출발이 가능할까요, 아니면 그냥 무너질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두 가지 다였습니다. 무너지면서도 어딘가를 붙들었고, 그 끝에서 결국 일어났습니다. 이사야 41장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는 말씀이 그 버팀목이었습니다.

포로상황 — 50을 넘어 학원을 접던 그날
30여 년을 고등학생들과 씨름해 온 강사가 학원 문을 닫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저는 그걸 직접 겪어봤는데, 한마디로 사방이 막힌 느낌이었습니다. 학생 수는 줄고, 건물 임대료는 그대 로고, 학부모들은 점점 더 젊은 강사를 선호했습니다. 결국 학원을 정리하고 남의 학원에 출강을 다녀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이게 단순히 직장을 잃는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아이들을 늦게 낳은 탓에 아직 학비가 한창 들어가는 시기였고, 생활비도 충당해야 했습니다. 50을 훌쩍 넘은 나이에 가르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 새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현실, 그건 그야말로 포로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포로상황이란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사면초가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사야서가 바벨론 포로 시절의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기록된 것처럼, 저에게도 그 말씀이 그대로 와닿은 건 아마 그 처지가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사람이 급해지면 이성이 마비된다는 말, 저는 그 시절에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조급하게 이력서를 쓰고, 아무 데나 연락을 돌리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핸드폰만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실수도 생기고, 판단도 흐려집니다. 제가 그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 "두려워 말라"가 왜 그렇게 반복되는가
이사야 41장 10절부터 14절 사이에 "두려워 말라"는 표현이 여러 번 반복됩니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는데, 어려움이 극에 달했을 때 다시 읽으니 이게 단순한 위로 멘트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신학적으로는 이를 신현현(theophany)이라고 부릅니다. 신현현이란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인간에게 구체적으로 드러내시는 사건을 뜻하는데, 이사야 41장은 그 드러냄이 말씀의 형태로 반복되는 구조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세 가지를 약속하십니다. 손을 붙드실 것, 두려움을 진정시키실 것, 그리고 대적을 흩어버리실 것. 이게 당시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약속이 아니라, 오늘날 각자의 삶에서 벼랑 끝에 선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약속이라고 이사야 주석은 풀이합니다(출처: 매튜 헨리 주석, nocr.net).
제가 직접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을 때, 처음에는 아무 감각도 없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믿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말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음 안에 차분함이 생겼습니다. 급하게 날뛰던 생각들이 가라앉고,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말씀에 힘이 있다는 걸 머리가 아니라 경험으로 처음 알았던 순간이었습니다.
특히 "내가 너의 오른 손을 붙들리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는 단순히 보호해 준다는 뜻을 넘어서 함께 걸어가겠다는 동행의 선언입니다. 동행이란 내가 강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가장 약할 때 옆에 서 있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란 바로 그 의미입니다. 임재란 단순한 존재감이 아니라 내 현실 속으로 직접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을 말합니다.
- 두려워 말라 — 이사야 41:10, 13, 14절에 걸쳐 반복되는 핵심 선언
- 오른 손을 붙드심 — 동행과 인도의 약속, 쓰러지지 않게 붙드심
- 대적의 소멸 —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이루어지는 심판과 회복
- 광야의 물과 그늘 — 곤궁한 여정 가운데 공급되는 풍성한 은혜
말씀의 힘 — 냉정을 되찾고, 환경회사에 첫 출근하던 날
말씀이 힘이 된다는 게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말씀을 새기고 기도하면서 생긴 변화는 기적 같은 일이 갑자기 생겼다는 게 아니라, 제가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패닉 상태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psychological stabilization)이 생긴 겁니다. 심리적 안정감이란 외부 압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압박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토대를 말합니다.
냉정을 되찾고 나서 저는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가능한 경로를 하나씩 두드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곳이 환경회사였습니다. 가르치는 일만 30년 넘게 해온 사람이 환경 관련 업무를 한다는 게 낯설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월급이 풍족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생활이 되고, 시간 여유가 생기면 다른 기회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사야 41장 17절 이하에는 광야에서 물을 공급하시고 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드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가나안을 향해 걸어가던 이스라엘처럼, 목적지에 도달한 게 아니라 아직 광야를 걷는 중이라는 걸 저는 잘 압니다. 하지만 그 광야 여정 자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 있다는 것, 그게 제가 지금 붙들고 있는 확신입니다. 성경 이외에도 심리학 연구에서는 신앙이 역경 회복력(resilience)을 높이는 데 유의미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다수 확인되어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Resilience). 여기서 회복력이란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받고도 다시 기능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제가 이 과정에서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참는 것과 그냥 멈춰있는 것은 다르다는 점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기다린다는 건 아무것도 안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이 안정되면 머리가 돌아가고, 머리가 돌아가면 손발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 순서가 맞아떨어진 게 저한테는 이 말씀이었던 겁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사야 41장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되나요?
A. 이사야 41장은 원래 바벨론 포로 시절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말씀이지만,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약속으로 해석됩니다. 제 경우엔 학원을 접고 일자리를 잃은 상황에서 이 말씀이 실제 버팀목이 됐습니다. 상황의 외형보다 그 안에서 흔들리는 마음의 구조가 같다면, 말씀의 적용도 같아지는 것 같습니다.
Q. 신앙이 없는 사람도 이 말씀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나요?
A. 저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 단정 짓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심리학에서도 확인되듯이, 어떤 확고한 신념 체계나 믿음의 언어를 반복적으로 내면화하는 것 자체가 심리적 안정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신앙 여부와 관계없이 "나는 괜찮아질 것이다"라는 언어를 붙드는 행위 자체가 위기 상황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Q. 50을 훌쩍 넘은 나이에 새로운 직장을 구한다는 건?
A. 제가 직접 해봤는데,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았습니다. 지인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이전 직종과 전혀 다른 분야도 열어두었습니다. 조급함이 가라앉고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상태가 됐을 때 비로소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타이밍보다 마음의 상태가 먼저였습니다.
Q. 말씀으로 기도했는데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저도 처음에는 기도해도 아무것도 안 바뀌는 것 같아서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변화는 외부 환경이 먼저가 아니라 내 마음 상태가 먼저 달라지는 방식으로 왔습니다. 그 변화가 너무 미세해서 처음엔 알아채기 어려웠지만, 돌아보면 분명히 있었습니다.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 기다리는 것 자체가 이 말씀이 말하는 인내의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저는 지금도 광야를 걷는 중입니다. 풍족하지 않고, 아직 갈 길도 멉니다. 하지만 30년 강사 인생이 한순간에 무너지던 그 자리에서 이 말씀 하나를 붙든 것이, 결국 지금 여기까지 오게 해 준 핵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에는 정말 힘이 있습니다. 단 그 힘은 상황을 뚝딱 바꿔주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부터 조용히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무조건 참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이사야 41장을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는 그 한 문장을 며칠이고 붙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마음이 차분해지면 머리가 돌아가고, 머리가 돌아가면 길이 보입니다. 제가 그 순서를 몸으로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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