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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묵상 그리고 삶

보이지 않는 미래 : 로마서 8:28 묵상 (불안, 섭리, 믿음)

마하나임220 2026. 8. 17. 01:12

목차


    무너졌던 그 자리 (고난 6편)

    저는 오랫동안 이 구절을 너무 가볍게 읽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말을 위로의 문구 정도로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단지 흩어져 있는 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완성됨을 이룬다 정도로만 알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해야만 하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내가족 내 삶 어떻게 할지 막막한 그때 이 말씀이 눈에 들어오면서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충격과도 같이 이 말씀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불안은 어디서 오는가 —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 건강, 경제, 부모님 걱정, 대인관계. 제 주변을 돌아봐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이유가 대부분 "모른다"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불확실성 내성(Uncertainty Tolerance)의 문제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불확실성 내성이란,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느냐 하는 심리적 역량을 의미합니다. 이 내성이 낮을수록 사람은 더 강한 불안을 느끼고, 반대로 높을수록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비교적 안정감을 유지합니다. 제 경험상 신앙은 이 불확실성 내성을 키우는 데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인 역할을 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바울은 "아마도 잘 될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선언합니다. 현재 상황이 어떤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는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딱 하나는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분들은 "그게 막연한 위로 아니냐"고 하시는데, 저는 이 구절을 파고들수록 그것이 위로를 넘어선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신비로움까지 느꼈습니다. 

    요약: 미래에 대한 불안은 "모른다"에서 비롯되며, 로마서 8:28은 상황을 모르더라도 하나님의 섭리만은 알 수 있다는 확신을 제시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한다"는 말의 진짜 무게

    이 구절에서 제가 가장 오래 붙들었던 단어는 "합력"입니다. 헬라어 원문으로는 '쉬네르게이(συνεργεῖ)'라는 동사가 쓰였는데, 여기서 쉬네르게이란 '함께(syn) 역사한다(ergei)'는 합성어로 영어의 'synergy(시너지)'의 어원이 바로 이 단어입니다. 각각의 사건이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서로 맞물려 하나의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우리는 보통 눈앞의 한 사건만 보기 때문입니다. 실패 하나, 기다림 하나, 눈물 하나. 그것만 보면 "왜 이런 일이 생겼지?"라는 질문만 생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 즉 만물을 목적을 향해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통치 행위는 그 사건들을 전부 연결해서 봅니다. 여기서 섭리란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모든 역사와 사건을 선한 목적을 위해 주관하신다는 신학적 개념입니다.

    이 개념을 퍼즐에 비유하면 정말 잘 맞아떨어집니다. 퍼즐 조각 하나만 손에 쥐고 있으면 그게 무슨 그림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리저리 맞춰가다 마침내 제자리를 찾았을 때 하나의 완성된 그림이 드러납니다. 제 인생에서도 당시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사건이 몇 년 뒤에야 "아, 이래서 그랬구나"로 읽히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딱 한 번이었는데, 그 한 번이 이 구절에 대한 제 신뢰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단, 한 가지 오해는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이 "고난 자체가 좋은 것이다"라는 뜻은 아닙니다. 고난은 고난입니다. 아프면 아픈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 아픔까지도 사용하셔서 결국 선한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이 이 구절의 핵심입니다. 로마서 8장 29절과 연결해 보면, 그 "선"의 방향은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출처: YouVersion 성경, 로마서 8:28-29).

    • "합력"의 원어 쉬네르게이는 각 사건이 서로 맞물려 하나의 목적으로 향한다는 뜻
    • 섭리(Providence)는 하나님이 모든 사건을 선한 목적으로 주관하심을 가리키는 신학 용어
    • 고난 자체가 좋다는 뜻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
    • 로마서 8:29에 따르면 "선"의 방향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과 연결됨
    요약: "합력"은 각각의 사건이 서로 맞물려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고난 자체가 아니라 고난을 통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핵심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간다는 것 — 씨앗을 심고 기다리는 농부처럼

    이 구절을 묵상할 때마다 저는 농부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씨앗을 뿌리고 다음 날 밭에 나가봐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땅은 그대로입니다. 제가 직접 이 감각을 경험해 본 건 아니지만, 기도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딱 그랬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 그런데 사실 그 시간에 땅속에서는 뿌리가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도 한동안 그 침묵을 부재(不在)로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신학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침묵은 부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역사(役事)인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役事)란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와 인간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개입하시고 일하심을 가리키는 신학 표현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오랫동안 신음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미 출애굽의 경로를 짜고 계셨다는 서사가 나옵니다.

    제 경험상 이 구절이 실제로 힘이 되는 순간은, 지금 당장 답이 없어도 "어차피 내 생각으로는 이 삶의 정답을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입니다. 어차피 정답이 없는 삶이라면, 절대적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이를 두고 어떤 분들은 "그게 그냥 포기 아니냐"고 하시는데, 저는 다르게 봅니다. 포기는 손을 놓는 것이고, 신앙은 손을 잡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신학자 존 칼빈(John Calvin)은 섭리를 논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는 단순한 예지(豫知)가 아니라 적극적인 통치"라고 설명했습니다. 예지(豫知)란 미래를 미리 아는 것을 말하는데, 칼빈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단지 아시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개입하고 이끄신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출처: Calvin's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그 능동적인 섭리 안에서 "모든 것"은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무의미해 보여도 합력의 대상이 됩니다.

    요약: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하나님의 역사(役事)는 계속되며, 섭리를 믿고 나아가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손을 잡는 능동적 신앙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로마서 8장 28절은 나쁜 일도 다 좋다는 뜻인가요?

    A. 그렇게 보는 시각도 있는데, 원문의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고난 자체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고난까지 사용하셔서 결국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뜻입니다. 아픔은 아픔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아픔이 헛되지 않음을 믿는 것이 이 구절의 실제 메시지에 가깝습니다.

     

    Q.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요?

    A. 솔직히 지금 이 순간 확인하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제 경험상 그 확인은 대부분 시간이 지난 뒤에야 옵니다.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고 나서야 그림이 보이듯, 나중에 뒤를 돌아봤을 때 "그래서였구나" 하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믿음이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Q.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나요?

    A. 바울은 이 약속의 대상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명시합니다. 보편적 낙관론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이들을 향한 약속이라는 점에서, 맹목적인 긍정주의와는 구별됩니다. 이 부분을 흐리면 구절의 의미가 크게 희석됩니다.

     

    Q. 기도해도 아무 변화가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저도 그 시간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다양한 시각이 있는데, 어떤 분들은 "기도의 방향을 점검하라"고 하고, 또 어떤 분들은 "그냥 계속 기다리는 것이 신앙"이라고 합니다. 제가 직접 지나온 경험으로는,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시간에 오히려 제 내면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씨앗이 땅속에서 자라듯이요.

     

    결론

    뒤를 돌아봤을 때 "참 잘 살았다"고 하는 사람과 "헛됐다"고 하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지, 저는 아직도 다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점점 확신하게 됩니다. 어차피 제 생각으로는 정답이 없는 삶이라면, 절대적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길이라는 것입니다.

    씨앗은 땅속에서 보이지 않게 자랍니다. 퍼즐 조각은 이리저리 움직이다 마침내 제자리를 찾습니다. 지금 당장 그림이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전체 그림을 보고 계십니다. 오늘 답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그 시간이 낭비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 그 가능성 하나를 붙들고 다음 발을 내디뎌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