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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졌던 그 자리 (고난 5편)
그날 저녁, 제가 술자리를 거절하고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가끔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을 마주할 때마다 그 밤이 떠오릅니다. 시험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제가 직접 겪고 나서야 이 구절의 무게를 제대로 느꼈습니다.
그날 술자리를 거절했던 이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침에 아내가 "오늘은 술 마시지 말고 일찍 들어와요"라고 했을 때, 저는 늘 듣던 말이라 흘려들었습니다. 수학강사로 꽤 잘 나가던 시절이었고, 그날도 원장님과 동료들이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며 술자리를 권했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 이상하게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왜 굳이 술자리에서 해야 하지?' 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술자리라는 것은 어떤 명분이 있어야 분위기가 형성되는 자리인데, 저는 그런 방식이 늘 마뜩잖았습니다. 아내의 부탁도 떠올랐고, 결국 저는 거절했습니다.
원장님과 동료들은 그런 저를 향해 공동체 의식이 없다느니, 단체 활동에서 그러면 안 된다느니 하며 날 선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런 사회적 압박이야말로 성경에서 말하는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의 현대적 형태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페이라스모스란 헬라어로 '유혹' 또는 '시련'을 동시에 뜻하는 단어로, 단순히 나쁜 것에 이끌리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압력이나 관계의 위기 앞에서 흔들리는 상황 전체를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옳은 것을 알면서도 잘못된 방향으로 끌려갈 수 있는 순간' 모두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 술자리 거절 → 동료들의 비난과 압박
- 아내의 부탁 → 작은 신호처럼 작용한 내면의 브레이크
- 그 순간의 선택 → 그날 밤 아들의 응급 상황으로 이어진 연결고리
선택의 기로, 고린도 교인들도 같은 고민을 했다
제 경험을 더 이해하고 싶어서 당시 고린도의 시대적 배경을 찾아봤습니다. 고린도는 로마 제국 시절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고, 아프로디테와 아폴론 신전이 즐비한 도시였습니다. 시민들의 모임과 잔치는 대부분 우상 제사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이런 자리를 무조건 피할 수 없었던 것이, 당시에는 그게 곧 사회생활이자 인간관계였기 때문입니다 (출처: 고린도전서 주석, nocr.net).
그러니 그들의 고민은 단순한 신앙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자리에 안 나가면 일자리를 잃는다', '관계가 끊어진다'는 현실적인 압박이었습니다. 제가 그날 술자리를 거절하면서 받은 비난처럼, 고린도 교인들도 매 순간 비슷한 압박을 받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즉 피스토스(πιστός)입니다. 피스토스란 헬라어로 '믿을 수 있는', '신실한'이라는 뜻으로, 단순한 위로의 언어가 아니라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는 존재임을 선언하는 단어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은 절대 말을 바꾸지 않는 분"이라는 의미가 이 한 단어에 담겨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안전은 그들의 지식이나 경건함에 달린 게 아니라, 오직 이 피스토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었다는 것이 신학자 핸드릭슨의 해석입니다.
피할 길은 항상 시험과 함께 예비되어 있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저는 갓 두 살이 된 아들이 갑자기 심하게 아프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내는 어쩔 줄 몰라 울고 있었고, 어디에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금처럼 119 시스템이 활성화된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직접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뛰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원문을 조사하면서 '시험 당할 즈음에'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쉰(σύν), 즉 '…와 함께'라는 전치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출처: 고린도전서 주석, nocr.net). 여기서 쉰이란 시험이 오는 그 순간에 이미 피할 길도 함께 주어진다는 뜻으로, 피할 길이 나중에 생기는 게 아니라 시험과 동시에 예비된다는 선언입니다. 제가 술자리를 거절한 그 순간이, 아들의 응급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피할 길'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기술과 과학이 발달한 지금은 오히려 유혹의 통로가 더 촘촘해졌다고 제 경험상 느낍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언제든 자리를 비울 수 있고, 핑계를 만들기도 쉬워졌습니다. 하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이 약속은, 기술이 발전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 밤을 기억할 때마다 확인하는 건 바로 그 사실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의 '시험'은 어떤 의미인가요?
A. 헬라어 원문에서 이 단어는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로, 죄로 이끄는 유혹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연단의 시련을 동시에 포함합니다. 어느 한 가지로만 해석하기보다는 두 의미가 복합된 것으로 보는 것이 성경학자들의 공통된 입장입니다. 실생활에서는 사회적 압박, 관계의 위기, 도덕적 선택의 순간 모두가 이 페이라스모스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Q. '피할 길을 내사'는 고통을 피하라는 뜻인가요?
A. 반드시 상황을 회피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원문에서 '즈음에'에 해당하는 쉰(σύν)은 시험과 동시에 피할 길이 함께 예비된다는 뜻입니다. 즉 어려운 상황 자체를 없애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방향을 함께 주신다는 약속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Q. 하나님이 미쁘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A. '미쁘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토스(πιστός)는 신실하고 믿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선언하는 단어입니다. 신자의 안전이 개인의 지식이나 경건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이 신실하심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Q. 고린도 교인들이 실제로 겪은 유혹은 어떤 것이었나요?
A. 고린도는 로마 제국의 상업 중심지로, 아프로디테와 아폴론 신전이 즐비했습니다. 당시 시민들의 모임과 잔치 대부분은 우상 제사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자리를 거절하면 사회적·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우상 제물을 먹느냐, 신전 잔치에 참석하느냐가 단순한 음식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관계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결론
그날 밤 아들을 안고 응급실로 뛰던 기억은 저에게 단순한 개인 에피소드가 아닙니다. 피스토스, 즉 신실하신 하나님이 시험과 함께 피할 길을 이미 예비하셨다는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의 선언이 제 삶 속에서 실제로 작동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이 구절을 떠올리는 것이 단순한 종교적 위로에 그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페이라스모스 앞에서 냉정하게 한 발 멈추고, 지금 이 상황에 함께 예비된 쉰, 즉 피할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것. 그것이 제가 이 구절에서 배운 실천적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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