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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졌던 그 자리 (믿음)
우리 수없이 많은 힘든 순간을 지나갑니다. 제일 처음 느끼는 감정은 그저 '큰일났다 어떻하지?' 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수십 번 읽으면서도 정작 제일 힘든 순간에는 단 한 번도 이 구절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집안 형편이 한순간에 기울었을 때도, 아이가 크게 다쳐서 응급실 복도에 서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이 선명한 고백이, 왜 그때는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복잡한 감정이 듭니다.
골짜기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골짜기를 함께 걷는다는 것
시편 23편 4절에서 다윗이 사용한 히브리어 표현 '찰마웨트(צַלְמָוֶת)'는 주석학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갈립니다. 여기서 찰마웨트란 '그림자(첼)'와 '죽음(무트)'이 결합된 합성어로,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죽음에 맞닿은 극한의 암흑을 뜻합니다. 일부에서는 이것을 단순히 어두운 골짜기 정도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보다 훨씬 무거운 의미로 읽는 편입니다. 실제로 팔레스타인 산지에는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좁고 깊은 협곡들이 많았고, 목자 없이 그곳을 지나는 양은 맹수의 먹이가 되거나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다윗은 목자의 삶을 몸으로 알았던 사람입니다. 사울에게 쫓기며 광야를 전전하던 시절, 전쟁터에서 배신을 경험하던 시간, 그리고 친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예루살렘을 도망쳐 나오던 그 밤까지. 그런 다윗이 "골짜기를 지날 때 해를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상황이 괜찮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상황이 최악일 때 쓴 고백이라는 점이 저에겐 더 깊이 와닿았습니다.
그런데 이걸 놓고 "믿음이 있으면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려운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직장을 그만둬야 했던 시기, 저도 두려웠습니다. 그 감정이 사라진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지금 내가 혼자 걷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발을 뗄 수 있었습니다. 이왕 그만두어야 한다면 말씀 붙들고 나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다닐지라도"라는 조건절입니다. 이 표현은 히브리어 원문에서도 골짜기를 피한다는 뜻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골짜기를 통과한다는 현실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경제적 어려움이나 관계의 단절, 실패의 시간이 면제되지는 않는다는 것, 그게 이 구절이 가진 솔직함이라고 저는 봅니다.
- 찰마웨트(צַלְמָוֶת): 히브리어 최상급 어둠 표현으로, 죽음과 맞닿은 극한의 암흑을 의미함
- "다닐지라도": 골짜기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는 현실을 전제한 표현
- 다윗의 고백은 상황이 좋아서가 아닌, 최악의 상황에서 나온 신앙 고백
- 평안의 근거는 환경의 변화가 아닌 하나님의 임재에 있음
지팡이와 막대기가 주는 위로, 그 의미를 다시 보다
이 구절 후반부에 나오는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는 표현은 처음 읽을 때 조금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지팡이와 막대기가 위로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선뜻 와닿지 않았거든요. 히브리어 원문을 찾아보면, 여기서 '미쉬에네트(מִשְׁעֶנֶת)'는 인도를 위한 지팡이를, '쉐베트(שֵׁבֶט)'는 맹수를 방어하는 막대기를 각각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하나는 길을 알려주는 도구이고, 다른 하나는 위험을 막아주는 무기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동시에 보호하신다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항상 부드럽고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게 항상 맞는 말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막대기는 때로 양을 잘못된 방향에서 강하게 밀어내는 데도 쓰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인도가 분명히 느껴졌던 순간들이 꼭 편안한 상황이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히려 무언가 막혀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나중에 "그때 그쪽으로 가지 않기를 잘 했다"고 느끼는 경우가 저에겐 더 많았습니다.
어느 날 밤 폭풍 속에서 등대 불빛 하나만 보고 항구로 들어온 어부처럼, 폭풍이 멈추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방향을 알려주는 불빛이 먼저였다는 것. 저는 그 이미지가 지팡이와 막대기의 역할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란 상황을 즉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안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함께 계신다는 의미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출처: 한글성경 원문 주석 자료에서도 이 부분의 히브리어 용법을 같은 방향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저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헤쳐나갈 수 있는 내적 능력까지 함께 주셨다고 믿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능력을 쓰기도 전에 포기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 내적 능력이 발동되기 위해 마음을 붙잡아 주는 닻 같은 역할을 한다고 저는 봅니다. 너무 힘들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때, 이 말씀이 지푸라기가 아니라 동아줄이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시편 23편 4절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실제 장소인가요?
A. 실제 지형을 배경으로 한 표현이기도 하고, 동시에 삶의 극한 상황을 상징하는 문학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어 찰마웨트(צַלְמָוֶת)는 팔레스타인의 좁고 깊은 협곡을 떠올리게 하지만, 다윗이 이 말을 쓴 맥락은 자신이 겪어온 생사의 위기 전반을 아우르는 고백에 가깝습니다. 지형과 경험이 겹쳐진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Q. 믿음이 있으면 정말로 두려움이 없어지나요?
A. "믿음이 있으면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다윗도 두려운 상황을 피한 것이 아니라 그 안을 걸었습니다. 믿음은 두려움의 감정 자체를 없애주기보다, 두려운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을 수 있는 근거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감정과 신앙은 별개의 층위에서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각각 다른 역할을 하는 건가요?
A. 맞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미쉬에네트(מִשְׁעֶנֶת)는 양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인도용 지팡이이고, 쉐베트(שֵׁבֶט)는 맹수나 외부 위험을 막아내는 방어용 막대기입니다. 하나는 길 안내, 다른 하나는 보호라는 서로 다른 기능을 갖고 있고, 이 둘이 함께 언급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돌보심이 얼마나 구체적인지를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힘든 상황에서 이 말씀이 잘 떠오르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저도 그랬습니다. 말씀을 아는 것과 그 말씀이 위기 순간에 작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더라고요. 평소에 반복해서 묵상하면서 내 언어로 소화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아는 말씀이 아니라 내 삶에 새겨진 말씀이어야 가장 어두운 순간에 떠오르는 경험을 저는 했습니다.
결론
제가 이 말씀 앞에서 가장 오래 붙잡혔던 건 "골짜기가 없다는 게 아니다"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고통이 면제된다는 약속이 아니라, 고통 안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약속. 어떻게 보면 그게 더 현실적이고 솔직한 위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어떤 골짜기를 지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이 말씀을 한 번 천천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당장 상황이 바뀌지 않더라도, 이 말씀 안에서 방향을 잃지 않을 근거 하나를 붙잡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시작이 됩니다. 지팡이와 막대기가 있는 목자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이미 믿음이자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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