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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나를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때 처음에는 괜찮다가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화가 나고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가만히 덮고 지나가자니 계속 나를 무시할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렇다고 화를 내자니 속이 좁은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잠언 29장 11절은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고 말합니다. 평상시에는 참으로 좋은 말씀이다 라고 수긍이 됩니다. 하지만 직접 그런 상황이 되면 말씀대로 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이 상황에 대해 좀더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감정조절, 참는 게 아니라 다스리는 것
심리학에서는 분노를 억압(repression)과 조절(regulation)로 구분합니다. 억압이란 감정 자체를 없는 척 눌러버리는 것이고, 조절이란 감정을 인식하되 그 감정이 행동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다스리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화가 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화가 난 상태에서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의 경우에 억압은 오히려 더 큰 폭발로 이어지더라고요. 속으로 꾹꾹 눌러두다가 어느 날 전혀 상관없는 일에 와르르 무너지는 식이었습니다. 반면 조절은 달랐습니다. "나 지금 화났다. 근데 지금 말하면 안 되겠다"라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이미 감정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행위였습니다.
잠언이 말하는 지혜로운 자의 '억제'는 바로 이 조절에 가깝습니다. 화가 없는 게 아니라, 화를 느끼면서도 그 화가 입을 열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입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APA)에 따르면 분노 조절 훈련의 핵심은 자극과 반응 사이의 '간격'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데 있다고 합니다.
그 간격이 때로는 단 5초일 수도 있습니다. 입을 열기 전에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는 것, 그 자리를 떠다 잠시 심 호흡을 하는 것, 그 짧은 멈춤이 후회할 말을 막아주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 억압(repression): 감정을 없는 척 눌러버리는 것 → 장기적으로 더 큰 폭발을 유발
- 조절(regulation): 감정을 인식하되 행동을 지배하지 않도록 다스리는 것 → 잠언이 말하는 '억제'에 해당
지혜, 말하지 않는 몇 초가 만드는 차이
직장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 쪽에서는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제가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며 여러 사람 앞에서 지적을 했습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바로 반박 논리가 올라왔습니다. "왜 저만요? 그건 제 담당이 아니잖아요." 너무나 화가 나고 억울해서 감정이 조절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못 한 게 아니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자리를 잠깐 피해서 나의 화로 인해 실수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커피 한 잔을 들고 왔고, 그 짧은 이동 시간 동안 한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말을 했을까?"
나중에 차분하게 이야기해보니 서로 다른 전달 경로에서 생긴 오해였습니다. 감정이 올라온 상태에서 바로 반박했다면 오해는 풀리지 않고 감정싸움만 남았을 겁니다. 참기를 잘했다는 값진 경험을 하였습니다. 참 지혜로운 대처였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다는 게 정말 가능한 말인가
사실 이 부분이 저한테는 가장 솔직하게 써야 하는 대목입니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라"는 말, 크리스천이라면 수없이 들어봤을 겁니다. 그런데 상처를 준 상대방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고 다닐 때,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내려놓는다는 게 '이제 화 안 난다'가 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는 지금도 화가 나 있다. 그런데 이 화를 내 손에 쥐고 있는 게 나를 더 힘들게 한다"는 걸 인식하는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출처: Bible Gateway(잠언 29:11, NIV)에서 이 구절의 영문 번역은 "but the wise bring calm in the end"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결국 평온을 가져온다는 표현인데, 그 평온이 즉각적인 게 아니라 '결국(in the end)'이라는 점이 저한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평온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이니까요. 조금 자의적인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솔직한 저의 감정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정말 힘들 때 기도로 나아가 보면, 답이 바로 오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낀 건, 기도하는 그 행위 자체가 분노를 나 혼자 끌어안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조절의 감각을 조금씩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다는 게, 어쩌면 그 감각을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화가 나도 참는 게 맞나요? 솔직히 터뜨리는 게 더 건강하다는 말도 있던데요.
A. 분노를 무조건 참는 것과 조절하는 것은 다릅니다. 심리학에서도 분노를 무작정 터뜨리는 것이 카타르시스가 된다는 주장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반박된 상태입니다. 제 경험상 터뜨리고 나서 시원한 건 잠깐이고, 그 다음에 오는 건 후회와 관계 손상이었습니다.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는 분명 있지만, 그 타이밍과 방식이 중요합니다.
Q. 상대방이 아무렇지 않게 행동할 때 더 화가 나는데, 이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저도 그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상대가 미안해하거나 달라지면 내려놓기가 훨씬 쉬운데, 아무렇지도 않아 보일 때는 억울함이 두 배가 됩니다. 그런데 그 상대의 반응은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결국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 억울함을 계속 끌어안고 있을지, 아니면 그 감정이 제 하루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놓아줄지였습니다. 쉽지 않지만, 그게 저를 위한 선택이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Q. 기도해도 화가 안 가라앉으면 믿음이 부족한 건가요?
A.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도가 즉각적인 감정 해소제가 아닌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제 경험상 기도 후에도 화가 남아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게 믿음의 문제라기보다는 감정이 그만큼 실제였다는 뜻이었습니다. 다만 기도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그 감정을 혼자 붙들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감각이 생기더라고요. 잠언 29장 11절도 지혜로운 자가 화가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Q. 화난 상태에서 꼭 말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나요?
A. 저는 그럴 때 '공격'과 '표현'을 구분하려고 했습니다. "당신이 잘못했다"가 아니라 "저는 그 상황에서 이렇게 느꼈습니다"로 바꾸는 것입니다. 감정을 설명하는 언어로 전환하면 상대방도 방어적으로 받아들이는 강도가 달라집니다. 물론 화가 많이 난 상태에서 이게 잘 안 되는 게 현실이지만, 몇 번 해보니 결과가 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결론
잠언 29장 11절을 읽으면서 저는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화가 난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화가 입을 통해 걸러짐 없이 나오도록 내버려 두느냐였습니다. 감정조절이란 결국 화가 올라오는 그 순간, 바로 반응하지 않는 선택을 반복하는 훈련입니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다는 것도, 지금 당장 평온해지는 경험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잠언은 지혜로운 자가 '결국' 평온을 가져온다고 말하니까요. 마음이 힘든 날, 기도로 나아가며 그 '결국'을 향해 한 걸음씩 가는 것, 저는 그게 이 말씀이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생각은 그렇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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