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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음을 떼다 (새출발)
이사야 43장 18~19절은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나라가 무너지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저도 이 말씀을 처음 붙잡았을 때, '지금 내 상황에 이 말씀이 정말 맞는 건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의문 자체가 답이었습니다.
과거의 실패가 발목을 잡을 때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간 건 단순한 불운이 아니었습니다. 우상숭배라는 신앙적 반역의 결과였습니다. 우상숭배란 눈에 보이는 것, 손으로 만든 것에 신뢰를 두는 행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 대신 다른 무언가를 더 의지하는 상태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선택의 결과로 나라 자체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하나님께서 그 상황에서 심판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회복을 말씀하셨다는 점입니다.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구절은 역사를 지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과거의 실패에 묶여서 앞을 못 보는 상태에서 벗어나라는 권고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회복시키시려 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 머릿속에서 계속 그 실패 장면을 반복 재생했습니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생각과 많은 후회스러움들이 발목을 잡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것 역시 모든것은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항상 불안함에 하나님의 개입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리는 마음의 상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과거는 교훈이 될 수 있지만 실패의 경험이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다면, 우리가 계속 그 실패를 움켜쥐고 있을 이유는 없습니다.
- 과거의 실패를 반복 재생하는 것은 하나님의 새 일을 기대하지 못하게 막는 장벽이 됩니다
- 이스라엘의 포로 상황처럼, 상황이 최악일수록 하나님의 개입은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 과거를 돌아보는 것과 과거에 갇히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길이 없는 곳에 새로운 길이 열리는 방식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 문장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광야는 방향을 잃기 쉬운 지형적 조건을 의미하고, 성경에서는 자주 인간의 한계와 길을 잃은 상황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등장합니다. 광야에 길도 없고 해법또한 없습니다. 그저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내 자신만이 갈팡질팡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불가능한 조건 위에 새 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를 정리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것과 길이 없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으신 건 아닙니다. 솔직히 이건 머리로는 알고 설교나 여러사람들의 조언을 통해서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막상 그 상황 안에 들어가면 잊어버리게 됩니다.
한 예를 들면,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수개월간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던 분을 압니다. 그분은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는 생각을 반복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인의 소개로 전혀 생각지 않았던 분야에 발을 들여놓았고, 몇 년 후 그곳에서 오히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직장을 잃었던 사건이 끝이 아니라 전환점이었던 겁니다. 흔히들 전화위복이란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은 그 의미의 해석이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해 놓으신 길을 우리는 가고 있지만 보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그 분께서 역사와 개인의 삶을 의도를 가지고 이끌어 가시고 계십니다. 당장 눈앞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도, 그 배경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작동하고 있다는 신뢰입니다. 출처: Bible Gateway, 이사야 43:18-19 원문 대조 즉 하나님의 새 일은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한 후에 시작되는 게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일일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걸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신뢰하는 믿음
하나님께서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 안에는 약간의 긴장이 있습니다. 새로운 일이 시작됐는데 당사자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여기서 실상은 헬라어로 '실제 기반' 또는 '보증'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쉽게 말해 믿음은 아직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미 실재하는 무언가에 근거를 두는 태도라는 뜻입니다. 출처: 국립국어원에서 '실상'의 용례를 찾아봐도, '실제로 있는 모양이나 상태'를 가리킵니다. 믿음이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실재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이 이 정의 안에 담겨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믿음 좋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하나님을 신뢰합니다"라고 말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마음속에서 계속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건 믿음이 아니라 말만 믿음인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읽고 묵상을하고 신앙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는 지금은 조금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참고 기다릴 알게 되었습니다.
요약: 믿음은 보이는 것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를 신뢰하는 훈련입니다. 그 훈련은 말씀 묵상에서 시작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과거 실패를 잊으라는 건가요, 기억하라는 건가요?
A. 이사야 43장의 말씀은 역사 자체를 지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과거의 실패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입니다. 교훈은 가져가되, 거기에 발목이 잡혀 앞을 못 보는 상태가 문제입니다. 실패를 기억하되 그 실패가 정체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Q. 하나님의 새 일을 기대하는데 아무 변화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요?
A.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 자체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섭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속도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멈춰 계신 건 아닙니다. 다만 그 시간을 버티는 방법이 중요한데, 말씀 묵상과 작은 순종이 그 시간을 지나는 실제적인 방법입니다.
Q. 이사야 43장이 지금 내 상황에도 적용되는 말씀인가요?
A. 이사야 43장은 이스라엘 포로 공동체에 주어진 말씀이지만, 하나님의 성품 자체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내시는 분이라는 선언은 특정 시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앙 안에서 이 말씀을 붙잡는 것은, 같은 하나님께 같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행위입니다.
Q. 믿음이 약해서 기대가 잘 안 생기면 어떻게 하나요?
A. 기대가 안 생기는 것 자체가 솔직한 신앙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기대가 없습니다"라고 하나님께 털어놓는 것도 기도입니다. 영적 민감성은 이미 믿음이 충만한 상태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부족함을 인정하고 말씀 앞에 앉는 반복에서 조금씩 자랍니다.
결론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가 과거의 닫힌 문만 바라보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아직 제가 보지 못한 다른 문을 열고 계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실패는 끝이 아니고, 막힌 길은 모든 길이 막힌 게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앞날을 걱정합니다. 가정경제 아내와갈등 자녀문제 직장문제 인간관계 등등 수없이 많은 것들에 불안해 하고 걱정을 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자신이 내린 결정들에 대해 후회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제는 위의 이사야 43장 18-19절 말씀처럼 과거는 참고로 남겨두고 더이상 집착하지 말고 또한 수 없이 많이 쌓인 문제들에 불안해 하지 말며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신 길을 따라 믿음으로 나아가 보는것은 어떨런지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오늘 붙잡고 있는 과거의 실패를 하나님께 내려놓는 것, 아직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을 기대하는 것,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작은 한 걸음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모든 길을 미리 알 필요는 없습니다. 한 걸음씩 따라가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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