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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묵상 그리고 삶

용서 : 골로새서 3장13절(갈등, 용납, 은혜)

마하나임220 2026. 8. 22. 21:36

목차


    일으켜 세움 (용서 7편)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실제로 가장 많이 소모하는 것은 시간도, 감정도 아니라 '판단의 에너지'라고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3절은 이 문제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제가 이 본문을 처음 제대로 읽었을 때 솔직히 좀 불편했습니다. 용서의 기준이 내 마음 상태가 아니라 내가 받은 은혜의 크기라는 말이, 위로보다 도전처럼 들렸거든요.



    갈등 — 공동체 안에 불만은 원래 생깁니다

    골로새서(Colossians)는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골로새 교회에 보낸 서신입니다. 당시 교회 공동체 안에는 서로 다른 배경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만과 갈등 그리고 오해와 충돌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바울은 3장에서 상대방을 향한 원망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합니다. 여기서 불만란 단순한 감정적 불쾌함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했다는 구체적인 판단이 서기 시작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경이 "불만은 생기면 안 된다"고 하지 않고 "불만이 생겼거든"이라고 조건절로 시작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불만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관계가 오래될수록 기대가 커지고,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집니다. 불만이 생겼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마음속에 계속 쌓아두는 것이 훨씬 위험합니다. 작은 서운함이 원망이 됩니다. 이것이 오래되면 관계 전체를 흔들기 시작합니다.

    • 불만은 인정하되, 마음속에 쌓아두는 단계로 넘기지 않는 것이 관건입니다
    • 원망이 굳어지면 상대방의 작은 행동도 부정적으로 해석되기 시작합니다
    • 공동체 갈등의 책임은 대개 양쪽 모두에게 있다는 것이 본문의 전제입니다
    요약: 갈등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성경도 인정하며, 문제는 불만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습니다.

    당시 교회 공동체 안에는 서로 다른 배경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는 자연스럽게 불만과 갈등, 오해와 충돌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3장에서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는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용납 — 다름을 내 기준에 맞추지 않는 것

    바울은 용서 앞에 '용납'을 먼저 말합니다. 용납이란 상대의 잘못을 옳다고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을 내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는 태도를 말합니다. 저는 처음에 '용납하면 결국 묵인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흐른 뒤에 그것은 묵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알던 어떤 분이 늘 직설적으로 말해서 자꾸 마음이 쓸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배려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분은 원래 그 방식이 오히려 존중의 표현이었습니다. 제는 "왜 나처럼 말하지 않지?"라는 기준을 먼저 세워놓고 색안경을 끼고 있었던 겁니다.

    용납이 전제되지 않으면 용서도 표면적인 선언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용서는 했는데 그 사람 보면 여전히 불편해"라는 말의 상당 부분은 용납이 빠진 상태에서 용서만 억지로 선언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종종 혼동되는 지점이라고 봅니다(출처: 한글 성경 연구).

    요약: 용납은 다름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기준을 절대화하지 않는 것이며, 이것이 용서로 가는 선행 조건입니다.

     

    은혜 — 용서의 기준은 내가 받은 것의 크기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문장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용서의 근거를 내 관용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먼저 받은 은혜의 깊이에 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은혜란 내가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먼저 값을 치르고 용서를 선물로 주신 사건을 말합니다.

    살아보면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을것 같은 상황들에 놓이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저에게 있어서 용서는  불가능이 되어 버리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애써 생각을 합니다. 상대방의 잘못이 너무 클 때가 아니라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제가 주님께 받은 용서를 먼저 기억하게 해 주세요"라고 구하고 나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도 제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용서는 감정이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향한 판단의 권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결정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꽉 쥔 손을 오래 유지하면 가장 힘든 사람은 손을 쥐고 있는 본인입니다. 상대방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제가 그 상처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이 비유가 단순해 보여도 제 경우엔 꽤 오래 남았습니다.

    요약: 용서의 기준은 내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께 받은 은혜의 크기이며, 그 기억이 용서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용서하면 관계를 반드시 회복해야 하나요?

    A. 용서와 화해는 구분해야 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용서는 내 마음속의 미움과 복수심을 하나님께 내려놓는 것이고, 화해는 관계가 실제로 회복되는 과정입니다. 상대방이 반성하지 않거나 관계가 건강하지 않을 경우, 용서는 하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Q. 용서했는데 왜 아직도 그 사람이 생각하면 불편할까요?

    A. 용서를 선언했더라도 감정 기억이 남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용납이 빠진 상태에서 용서만 억지로 결정했을 때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의 다름과 부족함을 내 기준으로 계속 재단하고 있다면, 용납의 단계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감정이 다 사라져야만 진짜 용서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먼저 사과하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나요?

    A. 성경의 기준은 상대방이 사과했느냐가 아니라 내가 먼저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에 있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렵고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을 감정적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기도 안에서 그 사람을 하나님께 맡기는 방식으로 접근했을 때 오히려 제 마음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Q. 용서와 정의(잘못에 대한 책임)는 어떻게 같이 갈 수 있나요?

    A. 용서가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에서 미움을 내려놓는 것과, 상대방이 그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과정은 별개입니다. 둘 다 가능하고, 둘 다 필요할 수 있습니다.

     

    결론

    골로새서 3장 13절이 제게 남긴 것은 "용서하세요"라는 단순한 권면이 아니었습니다. 용서의 출발점을 다시 잡게 해준 말씀이었습니다. 내 마음이 넓어서, 혹은 상대방이 충분히 뉘우쳐서가 아니라, 내가 먼저 받은 속죄와 은혜 때문에 용서가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여전히 잘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단히 이 말씀을 붙들고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생각하며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마음속에 아직 내려놓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억지로 감정을 지우려 하기보다 먼저 기도 안에서 그 사람을 하나님께 맡겨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작은 말 한마디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제 경험상, 큰 결단보다 작은 시작이 오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