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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저도 한동안 과거에 발이 묶여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따라오지 않았던 그 시간이 머릿속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거든요. 그때 다시 읽게 된 말씀이 빌립보서 3장 13-14절이었습니다. 감옥 안에서 쓴 편지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문장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의 무게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제게 어떻게 닿았는지, 그리고 실제로 적용해보니 어땠는지를 나눠보려 합니다.
감옥에서 쓴 편지, 그런데 왜 이렇게 앞을 향하나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수감된 상태에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옥중 서신 입니다. 신약성경에는 빌립보서 외에도 에베소서·골로새서·빌레몬서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갇힌 사람이 쓴 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이 편지에는 기쁨과 전진의 언어가 가득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자신의 이력을 꺼냅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율법 앞에서 흠 없던 사람. 요즘 식으로 말하면 스펙 좋고 종교적 성취도 탄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로 그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과거의 업적을 지우겠다는 게 아니라, 그게 자신의 걸음을 붙잡게 두지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당시 빌립보 교회 안에는 율법 준수와 종교적 의식을 강조하며 "우리는 이미 영적으로 완성됐다"고 주장하는 극단적 완전주의자들이 있었다고 성경 신학자들은 분석합니다. 당시 완전주의자들은 자신이 이미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믿어 더 이상의 성장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의 고백합니다.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한다"는 말은, 가장 많이 달린 사람이 스스로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앙이 깊을수록 안정감이 있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 본문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진짜 신앙의 성숙은 "다 됐다"는 확신이 아니라 "아직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일 수 있겠구나, 하고요.
-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쓴 옥중 서신 4편 중 하나
- 당시 교회 안 완전주의자들을 향한 반론으로도 읽히는 본문
- 바울은 가장 많은 업적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스스로 "아직"이라고 고백함
푯대(σκοπός)가 없으면 빠른 것도 소용없다
14절에 나오는 '푯대를 향하여'의 헬라어 원문은 '카타 스코폰(κατὰ σκοπόν)'입니다. 여기서 스코폰(σκοπός)이란 달리는 선수가 시선을 고정하는 목표 지점을 뜻하는 단어로, 오늘날 영어 'scope(범위, 시야)'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눈에서 푯대를 놓치지 않고 달린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목표가 있다는 것과, 달리는 내내 그 목표에 시선을 고정한다는 것은 다릅니다.
또 하나 눈에 걸리는 단어가 있습니다. 13절의 '잊어버리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필란다노메노스(ἐπιλανθανόμενος)'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기억이 흐릿해지는 수동적 망각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주의를 빼앗지 못하도록 능동적으로 차단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의식적 망각, 즉 일부러 관심을 거두는 노력인 셈이지요. 바울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과거에 붙들리지 않기로 선택한 겁니다.
저 역시 과거를 잊으려고 억누를수록 오히려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뜻처럼 "그 기억에서 관심을 거두는" 방향으로 접근하니 조금 달라졌습니다. 실패한 기억을 없애려는 게 아니라, 지금 달려야 할 방향에 시선을 돌리는 것, 그게 훨씬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4절 후반에 나오는 '부름의 상' 이란 표현 역시 고대 그리스 경기에서 승리자를 시상대 앞으로 불러 올리던 관습에서 온 언어입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심판관이 높은 곳에서 이름을 부르면 선수가 그 자리로 올라가 상을 받는 장면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위에서 부르신 부름'은 바로 그 이미지에서 나온 것으로, 경주 끝에 하나님께서 부르실 그 순간을 향해 지금 달리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앙생활에서 "열심히 하면 된다"고들 말하지만, 방향 없는 열심은 소진만 남기더라고요. 스코폰, 즉 푯대가 분명해야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도, 과거의 성공도 걸음을 멈추게 한다
제가 이 말씀에서 뒤늦게 발견한 게 있습니다. 바울이 잊으라고 한 것이 '실패한 과거'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3장 앞부분에서 그가 내려놓는 건 수치스러운 기록이 아닙니다. 오히려 유대인으로서 자랑할 만한 이력들, 베냐민 지파, 바리새인, 율법의 의로 흠 없던 사람, 그 모든 '빛나는 과거'를 내려놓습니다. 과거의 성공도 걸음을 붙잡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한때 잘 됐던 일을 기준으로 현재를 평가하면, 지금 이 자리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는 내가 잘했는데"라는 문장이 오늘 해야 할 걸음을 묶어버리는 경우 말입니다. 결국 과거의 성공도 하나의 집착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실패의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생각을 반복하다 보면, 현재의 에너지가 과거를 향해 소비됩니다. 회개와 자책은 다릅니다. 회개는 방향을 돌리는 행위이고, 자책은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입니다. 바울이 권하는 것은 회개 이후 다시 앞을 향하는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들이 페이스 조절을 할 때 가장 경계하는 것 중 하나가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라고 합니다. 자신보다 뒤처진 사람을 확인하거나, 이미 지나온 거리를 재확인하는 동작이 실제로 주의를 분산시키고 보폭을 흐트러뜨리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경주도 이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과거를 돌아볼 에너지를 오늘의 한 걸음에 쓰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그래서 훨씬 가치 있는 선택입니다.
- 과거의 실패: 자책과 후회로 현재를 소비하게 만듦
- 과거의 성공: "그때 잘했는데"라는 비교로 오늘의 걸음을 묶음
- 바울의 처방: 두 가지 모두 관심을 거두고 푯대로 시선을 돌릴 것
자주 묻는 질문
Q. 빌립보서 3장 13-14절의 '푯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나요?
A. 헬라어 원문의 스코폰(σκοπός)은 '눈이 고정되는 목표 지점'을 뜻합니다. 바울은 이를 세상의 성공이나 명예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부르심을 끝까지 이루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2절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예수님을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로 바라보라고 권합니다.
Q. 과거를 잊으라는 말이 회개를 안 해도 된다는 뜻인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회개와 자책은 구분해야 합니다. 회개는 방향을 돌리는 한 번의 행위이고, 자책은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맴도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잊음(에필란다노메노스)'은 회개 이후에도 계속 과거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능동적 선택을 가리킵니다.
Q. 바울이 이미 그렇게 많이 달렸는데 왜 아직도 "잡지 못했다"고 하나요?
A. 당시 빌립보 교회 안에 "우리는 이미 영적으로 완성됐다"는 극단적 완전주의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주장에 맞서, 가장 많이 달린 자신조차 아직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겸손의 표현이기도 하고, 완전주의적 사고를 경계하는 신학적 발언이기도 합니다.
Q. 신앙의 속도가 느린 것도 괜찮은 건가요?
A. 본문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스코폰, 즉 푯대가 분명하다면 느리게 달리더라도 목적지에 가까워집니다. 반대로 방향이 잘못된 상태에서 빨리 달리면 목적지에서 더 멀어질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조급함보다 방향의 정확성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결론
이 말씀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과거를 잊으면 된다"는 단순한 위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과 당시 배경을 들여다보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잊어버리고는 단순한 망각이 아니라 능동적인 시선의 이동이고, 푯대는 달리는 내내 눈을 떼지 않는 목표 지점입니다. 바울이 권하는 것은 "잊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앞에 있는 것을 붙잡으려고 전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의 일상생활중에 실패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억누르기보다 지금 해야 할 작은 한 걸음에 에너지를 쏟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었습니다. 과거는 교훈을 남기고 하나님께 맡기되, 시선은 오늘의 푯대를 향하는 것. 느리더라도 방향이 맞다면 한 걸음씩 가까워집니다. 오늘 푯대가 흐릿하게 느껴진다면, 빌립보서 3장 13-14절을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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