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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으켜 세움 (용서 8편)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워진다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랫동안 그 말이 잘 믿기지 않았습니다. 용서란 결국 상대방을 위한 것이지, 저를 위한 것인지 솔직히 확신이 없었습니다. 창세기 50장 20절에서 요셉이 형들 앞에서 한 말을 읽었을 때, 그저 성경이니깐 본받으라고 이렇게 써놓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섭리 — 악한 사건도 결론이 아니다
요셉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막상 창세기 50장 19~20절을 꼼꼼히 읽어보면 눈에 걸리는 구조가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무마하거나 축소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분명히 "해하려 하였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용서하면 상대방의 행동을 합리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새삼 확인했습니다. 요셉의 용서는 형들의 행동을 좋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최종 결말을 하나님께 맡기는 행위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가 등장합니다. 섭리란 하나님이 역사 안에서 모든 사건을 그분의 목적에 맞게 이끌어가신다는 신학적 신념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사람이 악한 의도로 행한 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그분의 선한 뜻 안에서 재배치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개념은 바울이 로마서 8장 28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한 말씀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출처: YouVersion 성경).
요셉은 어린 시절 형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끌려갔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어느 단계에서도 상황은 요셉에게 유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결국 애굽의 총리(vizier) 자리까지 이끄셨습니다. 총리란 고대 애굽 제국에서 파라오 다음의 실권자로, 전국의 행정과 곡물 분배를 총괄하는 자리입니다. 단순한 성공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알려진 세계의 식량 공급 체계 전체를 관장하는 아주 중차대한 위치였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느낀 건, 요셉이 나중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건 결과를 먼저 봤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구덩이에 던져지던 날, 감옥 문이 닫히던 날, 그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훗날 돌아보며 "하나님이 선으로 바꾸셨다"고 말할 수 있었던 건 과거를 재해석하는 믿음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 섭리(providence)란 악한 사건도 하나님의 선한 목적 안에 재배치될 수 있다는 신념입니다.
- 로마서 8:28은 이 섭리 신앙의 핵심 구절로, 요셉의 고백과 직접 연결됩니다.
- 총리 자리는 당시 세계의 식량 위기를 해결할 실권을 가진 자리였습니다.
상처 치유와 복수 포기 — 심판자의 자리를 내려놓을 때
요셉이 한 말 중에 제가 가장 오래 붙들었던 문장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였습니다. 이 표현은 창세기 30장 2절에서 야곱이 라헬에게 먼저 썼던 말이기도 합니다. 야곱은 "성태치 못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며 생사의 주권이 자신에게 없음을 고백했고, 요셉은 그 언어를 빌려 복수의 주권도 자신에게 없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처음에 요셉의 이 말이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용서 이야기에서 흔히 강조되는 건 "마음을 비워라", "원한을 내려놓아라"는 심리적 처방인데, 요셉은 그것보다 훨씬 신학적인 논리로 복수를 포기했습니다. 바울도 로마서 12장 19절에서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기록합니다(출처: YouVersion 성경). 쉽게 말해, 심판의 자리는 원래 하나님의 것이고, 내가 그 자리에 앉으려 할 때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저또한 누군가에게 받은 말이나 행동 때문에 마음이 오랫동안 무거웠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가장 힘들었던 건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해 제가 계속 판결을 내리려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 사람이 틀렸다', '나는 억울하다', '내가 갚아줘야 한다' — 그 생각의 반복이 사건보다 저를 더 오래 가두었습니다.
요셉의 치유는 단순히 시간이 지났기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자신의 상처를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쳤고, 그 결과 형들에게 복수 대신 부양을 약속할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50장 21절에서 요셉은 형제들과 그들의 자녀들까지 기르겠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쓰인 단어 '레브(lev)'는 본래 '심장'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심장 깊이 스며드는 진심 어린 위로를 의미합니다. 겉으로만 하는 화해가 아니라,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자비였다는 뜻입니다.
상처 치유가 완성되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이 본문에서 봤습니다. 상처는 잊혀질 때 치유되는 게 아닙니다. 그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게 될 때, 그리고 그 아픔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자원이 될 때 비로소 무게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요셉이 겪은 고난이 결국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는 데 쓰였듯이, 내가 경험한 아픔도 비슷한 아픔을 안고 있는 사람 앞에서 언어가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게 제가 이 본문을 자꾸 다시 읽게 되는 이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요셉이 형들을 용서한 건 형들이 반성했기 때문 아닌가요?
A. 일반적으로 용서는 상대방의 반성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창세기 본문을 보면 요셉의 용서는 형들의 태도 변화에 조건을 두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두려워 떨고 있을 때 먼저 "두려워하지 마소서"라고 말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선행적 용서가 오히려 상대방을 더 깊이 무너뜨리고, 관계를 진짜로 회복시키는 방식이었습니다.
Q. 하나님이 선으로 바꾸신다면 상처받은 내 책임은 없는 건가요?
A. 섭리 신앙은 피해자의 고통을 무력화하거나 가해자의 책임을 면제하지 않습니다. 요셉 본문에서도 형들의 행동은 명확히 "해하려 한 것"으로 기록됩니다. 하나님이 선으로 바꾸신다는 것은 사건의 결과를 다르게 이끄신다는 뜻이지, 그 과정의 잘못을 지워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구분이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Q. 상처가 너무 커서 하나님 섭리를 믿기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하나요?
A. 요셉도 구덩이에 던져지던 순간에는 섭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섭리 신앙은 현재의 고통 속에서 즉각 납득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난 후 돌아볼 때 고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당장 이해가 안 된다는 것 자체가 믿음의 실패가 아닙니다. 요셉의 이야기도 결말을 먼저 알고 쓰인 것이 아니라, 살아내고 난 뒤에 정리된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Q. 복수를 포기하면 억울함은 어디로 가나요?
A. 요셉이 보여준 방식은 억울함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자리를 하나님께 넘기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12:19에서 바울이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고 한 것처럼, 억울함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은 감정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의 처리 주체를 이전하는 행위입니다. 제 경험상 그렇게 했을 때 마음이 오히려 더 가벼워졌습니다.
결론
요셉의 이야기를 그저 "용서하면 복을 받는다"는 교훈으로 읽으면 절반도 못 가져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본문에서 건진 핵심은 이겁니다. 요셉은 과거를 형들의 악함이라는 렌즈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라는 렌즈로 재해석했고, 그 관점의 전환이 복수 포기와 상처 치유를 동시에 가능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상처 앞에 서 있다면, 그 사건을 마지막 결론으로 닫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 속에서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 상처가 언젠가 누군가의 아픔에 말을 건네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 요셉이 그것을 살아서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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