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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으켜 세움 (용서 5편)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용서하라"는 말을 너무 쉽게 흘려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제게 부당한 말을 했던 날 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여 머릿속에서 온갖 반격 시나리오를 짜고 있었죠. 그때 로마서 12장 21절 말씀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그 한 문장을 몇 번이고 되새기면서 밤을 지샜습니다.
복수의 유혹 — 왜 우리는 되갚고 싶어질까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은 순간,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뭐였을까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머릿속으로 상대방이 틀렸다는 근거를 차곡차곡 쌓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생기면 큰 목소리로 제 입장을 내세우고, 상대가 잘못했다는 걸 콕 짚어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좀 시원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만 더 불편해지고 관계만 더 틀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쓴 서기 57년경, 로마는 기독교인들에게 결코 우호적인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믿음 때문에 조롱과 차별, 경제적 손실까지 감수해야 했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로마 문화는 힘으로 복수하는 것을 당연시했고, 유대 율법에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 즉 피해를 입은 만큼 똑같이 돌려주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소하려는 사고방식이 있었습니다. 그 시대 성도들이 복수의 유혹을 얼마나 강하게 느끼고 있었을지 쉽게 짐작할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성도들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악의 고리를 끊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악을 더 크게 키우는 일이라고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못 박는 이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출처: 대한성서공회, 누가복음 23:34)라고 기도하신 장면은, 제가 분노 속에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붙드는 말씀입니다. 그 기도 한 마디가 복수가 아닌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맡김 — 내려놓는 것이 믿음이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게 하신 적이 있습니다. 상대를 어떻게 바꿀까 궁리하던 제가, 정작 제 안의 분노와 마주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내려놓는다는 게 그냥 참는 것처럼 느껴져서 계속 억울한 마음이 올라왔거든요.
바울은 이 지점에서 신명기 32장 35절을 직접 인용합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나님의 공의(公義), 즉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가장 올바르게 판단하시는 속성을 신뢰하라는 권면입니다. 여기서 공의란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살피시는 하나님의 완전한 판단을 가리킵니다.
아프리카의 한 마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웃과 심하게 다툰 농부가 목사님을 찾아가 복수하고 싶다고 털어놓았을 때, 목사님은 뜻밖의 조언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그 사람의 밭에 몰래 물을 조금씩 대주십시오." 농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대로 했고, 몇 주가 지나자 이상한 변화를 느꼈습니다. 상대를 위해 물을 주다 보니 미움이 조금씩 사라졌던 것입니다. 어느 날 이웃은 눈물을 흘리며 "누군가 제 밭을 계속 돌봐준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고, 두 사람은 오랜 갈등을 풀고 화해했습니다.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제 손으로 결말을 통제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때와 방식을 신뢰하는 적극적인 믿음의 행동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한 번에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도 가운데 날마다 다시 내려놓는 반복이 필요했습니다.
- 하나님의 공의(公義):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살피시는 완전한 판단
- 내려놓음은 수동적 체념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능동적 믿음의 결단
- 직접 심판자가 되려 할 때 오히려 더 큰 상처와 죄가 생길 수 있음
- 선한 행동의 반복은 자신의 마음속 미움도 함께 녹여 냄
선으로 악을 이김 — 가장 강한 무기의 정체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고, 무엇보다 제 마음에 평안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복수는 잠시 통쾌할 수 있지만, 용서는 오래도록 마음을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을요. 제가 분노를 붙들고 있는 동안에는 온종일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밤새 같은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온 건 상대가 사과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먼저 내려놓기로 결심했을 때였습니다.
바울이 권면하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단순히 참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구절이 속한 로마서 12장 전체 문맥을 보면, 대속(代贖)을 믿는 믿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대속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신 사건, 즉 그 희생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구원의 핵심을 말합니다. 이 대속의 은혜를 진심으로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자신이 먼저 용서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 상대를 향한 분노도 조금 다르게 보이게 됩니다.
또한 바울은 겸손, 봉사, 평화를 유지하는 삶과 원수에게도 친절을 베푸는 생활을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제시합니다(출처: 한글성경연구, 로마서 12장 묵상). 원수가 배고프면 먹이고 목마르면 마시게 하라는 말씀은, 사랑의 행동으로 악의 연쇄를 끊어내라는 뜻입니다. 선은 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방식입니다. 저 경우도 이 선택은 쉽지 않았지만, 그 이후에 찾아온 마음의 자유는 어떤 복수로도 얻을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말그대로 평안이 찾아온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이 그냥 참으라는 뜻인가요?
A. 아닙니다.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말하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수동적인 인내가 아니라, 겸손과 봉사, 원수에게도 친절을 베푸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제 경험상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냥 참는 것은 내면에 분노가 쌓이지만, 선을 행하는 쪽은 오히려 제 마음이 먼저 자유로워졌습니다.
Q. 하나님께 맡긴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건가요?
A. 바울은 신명기 32장 35절을 인용해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실제로 제가 해본 방식은, 기도 중에 그 분노와 억울함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털어놓고, 제가 직접 결말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겠다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에 되지 않아서 날마다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Q. 용서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바뀌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요?
A. 직접 겪어보니 용서는 상대를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마음을 미움의 감옥에서 꺼내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상대가 변하든 변하지 않든, 분노를 붙들고 있는 동안 가장 많이 소모되는 건 제 자신이었습니다. 용서는 상대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제 자신에게 주는 자유였습니다.
Q. 로마서 12장은 어떤 상황에서 쓰인 말씀인가요?
A. 사도 바울이 서기 57년경 고린도에서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당시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믿음 때문에 조롱과 차별, 경제적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현실 속에서도 세상의 방식인 동해보복법으로 맞서지 말고, 복음의 방식으로 살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결론
직장과 가정, 교회와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을 때, 제가 먼저 손을 뻗어 선을 행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대속의 은혜를 먼저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떠올립니다. 제가 복수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경험이 반복될수록,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이 단순한 글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있는 능력임을 조금씩 더 믿게 됩니다.
오늘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마음이 무너진 날이라면, 당장 완벽한 용서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그 분노를 기도 안에서 하나님께 먼저 꺼내놓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제 경험을 바탕으로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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