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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으켜 세움 (용서 4편)
아마도 이 말씀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허물이나 실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뒤, 어느 순간 그 사람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달라져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입으로는 "괜찮아"라고 했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겁니다. 잠언 17장 9절 말씀이 애써 외면하고 있는 내마음을 정통으로 찌르고 있습니다.
편견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쌓입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지만 편견이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더라고요. 여기서 편견이란 상대방의 실제 모습과 관계없이 이미 형성된 부정적 선입관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흘려듣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친한 지인이 제3자의 실수를 전해줬을 때, 저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거든요.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뭐 그럴수도 있지'라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며칠 뒤 그 당사자를 만났을 때, 예전과 다르게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의심하는 제 자신을 발견한 겁니다. 정작 저는 아무것도 직접 경험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제가 들은 건 한 사람의 입장에서 걸러진 이야기였을 뿐인데, 그게 이미 제 안에서 사실처럼 굳어버린 상태였습니다. 심지어는 나비효과처럼 전해들은 말들은 상당히 푸풀려져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잠언 17장 9절은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라고 말합니다(출처: YouVersion 성경). 이 말씀을 처음 읽었을 때는 '덮어준다'는 표현이 왠지 죄를 눈감아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회개한 사람의 지난 실수를 굳이 다시 끄집어내지 않는 것, 그 사람을 그릇된 이미지로 보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의 방식이라는 뜻이었습니다.
- 편견은 직접 경험이 아닌 '전해 들은 이야기'에서도 충분히 형성됩니다
- 허물을 덮어준다는 건 죄를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공간을 여는 일입니다
- 잠언 17:9의 '덮어줌'은 능동적 선택, 즉 의지적 사랑의 행위입니다
험담이 관계를 무너뜨리는 방식
"너한테만 하는 이야기인데" 이 말, 저도 몇 번은 들어봤고 솔직히 말하면 수없이 했던 것 같습니다. 험담이란 원래 상대방이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의 허물이나 약점을 이야기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나만 알고 끝나는 이야기'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거죠.
잠언의 표현대로 하면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입니다. 다시말해 사람과 사람 사이를 틈이 벌어지게 만드는 아주 잘못행위를 말합니다. 처음엔 그냥 하소연처럼 시작되지만, 한 번 반복되고 두 번 반복될수록 이야기는 살이 붙고, 감정도 덩달아 부풀어 오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게 되고, 결국 소문은 실제 사건보다 훨씬 크게 자라납니다.
처음 당장은 이야기를 퍼뜨린 사람이 정보를 가진 사람처럼 보이고, 심지어 관계의 중심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조심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내 이야기도 언젠가 저 입을 통해 나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뢰를 잃은 쪽은 실수를 한 사람이 아니라 소문을 퍼뜨린 사람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비밀을 지키지 못하는 인간의 심리를 담은 이야기인데, 이게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꺼내놓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허물을 덮어준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훈련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물을 덮는다는 것은 상대를 위한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허물 이야기를 들은 뒤 그 사람을 편견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이런 질문을 주셨습니다. "그 사람의 허물을 들은 게 아니라, 사랑할 기회를 잃고 있는 건 아니냐"는 거였습니다. 그 말이 꽤 오래 제 안에 남았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라고 말합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여기서 '덮는다'는 표현은 단순히 눈을 감는 게 아니라, 사랑이 죄가 가지는 악한 힘을 무력화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해 사랑이 있는 관계에서는 상대의 실수로 인해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원천봉쇄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저의 경우에도 누군가의 허물을 들었을 때 그것을 입에 올리는 대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도할때면 신기하게도 제 마음 안에 쌓여 있던 부정적인 감정이 조금씩 옅어지더라고요. 용서는 상대를 풀어주는 일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저 자신을 먼저 풀어주는 일이기도 하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허물을 덮는 삶은 훈련의 결과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결단한다고 해서 바로 바뀌는 게 아니더라고요. 가족과 이웃과 직장동료들 사이에서 부딪히며 살아가는 일상 안에서 조금씩 연습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직장과 교회와 가정도 그렇습니다.
제 경험상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변화가 있습니다. 30대보다 40대가, 40대보다 그 이후가 사람을 향해 조금 더 너그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저 자신도 실수하고 용서받아야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게 여유이고, 그 여유가 상대의 허물을 덮어주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현재의 허물을 덮어주는 척하면서 예전 허물을 슬쩍 끄집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도 그랬잖아"라는 말이 가장 대표적이죠. 이건 덮어주는 게 아니라 더 깊이 찌르는 일입니다. 즉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심리가 그 밑에 깔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이 부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허물을 덮어준다는 것이 결국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 은혜를 받은 자로서 같은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 맞다고 느낍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신앙의 성숙 과정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허물을 덮어준다는 게 잘못을 그냥 넘어가라는 뜻인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잠언 17장 9절에서 말하는 '덮어줌'은 회개하거나 이미 지난 실수를 계속 들추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죄나 잘못 자체를 모른 척하라는 뜻이 아니라, 관계 회복을 위해 그 사람을 고착된 이미지로 가두지 않는 것입니다. 필요한 경우 솔직한 대화나 권면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Q. 험담이 나쁜 건 알겠는데, 그럼 억울한 감정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감정 자체를 억누르라는 게 아닙니다. 억울함이나 상처를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그 감정을 제3자에게 퍼뜨리는 방식으로 해소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 경우에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꾸는 연습을 했고, 그게 오히려 제 내면의 감정을 정리하는 데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Q. 용서했는데 같은 실수가 반복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용서와 신뢰는 다른 문제입니다. 용서는 내 마음 안에서 그 사람을 향한 쓴뿌리를 놓아주는 결단이고, 신뢰는 상대가 실제로 변화된 행동을 보여줄 때 쌓이는 것입니다. 반복적인 실수 앞에서도 용서는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같은 상황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현명한 경계와 사랑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Q. 예전 허물을 자꾸 꺼내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A. 제 경험상 그런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맞받아치면 상황이 더 악화됩니다. 가능하다면 차분하게 "그 이야기는 이미 지난 일이고, 저는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반복적으로 과거를 소환한다면, 그건 그 사람 내면의 문제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과도하게 상처받기보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결론
우리는 모두 허물이 있는 존재입니다. 타인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선택하고 반복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분명히 깨닫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실제 관계 속에서 부딪히고, 실패하고 다시 결단하는 과정이 쌓이면서 조금씩 그 방향에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 주변에 누군가의 허물 이야기를 들어서 그 사람을 향한 시선이 달라진 분이 계신다면, 그 이야기를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작은 결단 하나가 관계를 살리고, 공동체를 따뜻하게 만드는 시작점이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 미래가 기술이 편리한 세상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사람의 허물을 품을 줄 아는 따뜻한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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