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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으켜 세움 (용서 3편)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창세기 33:4)
창세기 33장 4절에는 단 한 문장으로 기록된 장면이 있습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20년의 원한이 달음박질 한 번으로 무너진 순간입니다. 저는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진정한 화해일까? 야곱은 에서가 무서웠을 것이고 에서의 마음이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과 겹쳐 보니, 이게 단순한 감동 스토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20년의 원한을 품고 달려온 형
야곱과 에서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창세기 25장과 27장을 먼저 짚어야 합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長子權), 즉 맏아들로서 갖는 상속권과 가문 계승의 권리를 팥죽 한 그릇에 사들였습니다. 여기서 장자권이란 단순한 재산 상속을 넘어 가문의 제사장적 역할과 영적 계보를 잇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야곱은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직접 속여 장자의 축복까지 가로챘습니다.
에서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됩니다. 저도 가까운 사람에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배신감을 느꼈을 때, 그 감정이 단순한 화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거든요. 에서의 경우는 그보다 훨씬 컸을 겁니다. 결국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두 형제는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야곱이 받은 첫 번째 소식은 에서가 400명을 이끌고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야곱이 "크게 두렵고 답답하여"(창 32:7) 가족을 두 패로 나눴다고 기록합니다. 400명이라는 숫자가 단순한 호위대인지 아니면 복수를 위한 군대인지, 해석이 갈리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에서가 처음부터 화해를 원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보다는 '야곱의 두려움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을 거야'라는 쪽이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그 만남이 어떻게 끝났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람의 마음을 바꾸신다
창세기 33장 4절의 핵심은 "에서가 달려왔다"는 동사 하나에 있습니다. 달려온다는 것은 미리 준비된 마음의 표현 즉 '하나님께서 이미 에서의 마음을 바꾸어 놓으셨다' 라는 해석이 지배적인데 장면만 놓고 보면 복수를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잠언 21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여기서 '보(洑)'란 농업용 수로를 가리키는데, 쉽게 말해 물길을 내는 자가 물의 방향을 정한다는 뜻입니다. 왕의 마음도 하나님께서 방향을 바꾸실 수 있다면, 한 사람의 마음을 돌리시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저 역시 아내와의 갈등 그리고 동생과의 갈등 등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오해로 인해 관계가 틀어져 버린 시간 그리고 다시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저는 정말 망설여졌습니다. '아직도 나를 미워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상대방도 같은 무게를 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저였지만, 그 자리가 만들어진 것은 제 노력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지금도 듭니다.
신학적으로 이 장면은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providential work), 즉 눈에 보이지 않게 역사의 흐름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을 보여줍니다. 섭리적 역사란 기적처럼 눈에 띄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환경을 통해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에서의 마음이 바뀐 것도 바로 그런 방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 또한 처음에 복수일 수도 있을 거야 라는 마음을 지울 수 있었고 또한 감동으로 이어졌습니다.
- 야곱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고(창 32:9~12), 그 기도가 에서의 마음을 움직이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 잠언 21:1은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명확히 선언합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 인간의 계획과 두려움이 최대치에 달했을 때, 하나님의 응답은 예상 밖의 방향에서 왔습니다
용서란 무엇인가 — 눈물이 말해주는 것
창세기 33장 4절의 마지막 문장은 "서로 우니라"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울었습니다. 그런데 왜 울었을까요? 야곱은 두려웠던 형이 이토록 따뜻하게 맞아줬다는 안도와 감격 때문에 울었을 것입니다. 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20년 동안 품었던 복수심이 막상 동생 앞에서 사라져 버렸을 때, 그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때문에 울었을 것입니다.
용서란 흔히 잘못을 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제 생각에 여기서의 용서란 잘못의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이 더 이상 관계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마음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에서가 20년의 상처를 하루아침에 잊은 것이 아닐 겁니다. 다만 그 상처보다 동생을 향한 사랑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한편으론 관계가 회복되는 순간에 오히려 상처가 더 또렷하게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사람이 내게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었구나'라는 감각도 돌아옵니다. 그 두 감정이 뒤섞여 눈물이 나오는 것, 야곱과 에서의 울음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인지적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라고 부릅니다. 인지적 재평가란 동일한 사건을 다른 관점으로 해석함으로써 감정 반응 자체를 바꾸는 과정입니다. 에서의 경우 그 재평가를 하나님께서 먼저 이끌어 주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의 깨어진 관계에 적용하기
한 예화로 부모의 유산 문제로 크게 다툰 형제가 서로 얼굴도 보지 않은 채 15년을 보냈습니다. 동생은 형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고, 형 역시 먼저 연락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병원 복도에서 마주쳤습니다. 동생이 떨리는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했고, 형은 잠시 침묵하다가 동생을 꼭 안으며 말했습니다. "나도 그 말하고 싶었어." 15년의 벽이 몇 분 만에 무너진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울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야곱과 에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신이 아닌 인간이 먼저 입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어떤 내면의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에서와 야곱의 경우엔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밤새 기도하며 씨름한 것이 그 준비였습니다. 성경은 그 씨름을 신학적으로 쓰레슁(wrestling with God), 즉 하나님과의 영적 대결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영적 대결이란 단순한 기도를 넘어, 자신의 두려움과 죄성을 하나님 앞에 낱낱이 꺼내놓는 처절한 자기 직면을 의미합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성경 자료).
모든 관계가 반드시 원래대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이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관계는 화해의 시도 자체가 상처를 더 크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이 본문에서 배운 것은, 결과를 예단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 꺼내놓는 것이 순서라는 점입니다. 야곱은 에서의 마음을 바꾸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 태도가 결국 화해의 문을 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온 것이 정말 복수 목적이었나요?
A. 해석이 나뉘는 부분입니다. 처음부터 화해를 위해 왔다고 보는 시각도 있고, 복수 의도가 있었다가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셨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야곱의 두려움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고, 그 두려움 속에서 드린 기도가 실제로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통로가 됐다고 보는 쪽입니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의 개입이 핵심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Q. 야곱이 먼저 잘못했는데도 하나님이 야곱 편을 드신 건 불공평하지 않나요?
A. 이 질문은 창세기를 읽는 분들이 많이 가지는 고민입니다. 성경은 야곱의 행동이 옳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야곱은 그 행동의 결과로 20년간 도망자 신세를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도덕적 우월함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은혜(grace)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관계 회복을 원하는데 상대가 거부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모든 화해가 야곱과 에서처럼 극적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화해를 시도했는데 거부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야곱처럼 먼저 내 마음을 정리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Q. 기도하면 정말 상대방의 마음이 바뀌나요?
A. 기도가 자동으로 상대를 바꿔준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야곱의 경우를 보면, 기도가 먼저 야곱 자신을 바꿨습니다. 얍복 강가에서 씨름한 후 야곱은 달라진 모습으로 에서 앞에 섰습니다. 기도의 첫 번째 변화는 내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 그것이 제가 이 본문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결론
창세기 33장 4절은 짧지만 묵직합니다. 20년의 원한이 단 한 번의 달음박질로 무너지는 장면, 저는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에서의 선량함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마음을 만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깨어진 관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억지로 열 수도 없고, 과거를 없던 일로 돌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야곱처럼 내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솔직히 꺼내놓고, 내가 먼저 겸손하게 다가가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의 속박에서 먼저 자유로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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