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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는 삶(더디함)
퇴근 후 소파에 쓰러지고 싶었던 날, 아내의 한마디에 순간 가슴이 확 올라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순간적으로 말을 내뱉지 않고 기도하고 성경말씀을 떠올렸는데 이제 보니 그것이 야고보서 1장 19-20절 말씀 이었습니다. 아마 참지 못했더라면 분명 후회할 말을 내뱉었을 것입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와 성내기는 더디 하라는 이 짧은 한 구절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참아야 한다"고 알지만, 막상 그 순간은 다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분노를 다스려야 한다"는 말은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어왔습니다. 설교 시간마다, 큐티 교재마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믿음이 깊어질수록 화가 잘 나지 않는가 하면, 제 경우에는 노력은 하지만 잘 되지는 않습니다.
야고보서가 기록될 당시의 상황을 보면 성도들은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 차별, 크고 작은 인간관계의 갈등 속에서 신앙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편안한 환경에서 쓰인 권면이 아니라,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아주 현실적인 처방이었던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저자로 알려진 야고보는 수신자들에게 헬라어로 '이스테(ἴστε)'라는 표현을 씁니다. 여기서 이스테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너희가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는 직설법적 확인에 가깝습니다. 쉽게 말해, 이미 아는 진리를 삶에서 살아내라는 촉구입니다. 저도 말씀을 묵상하다가 이 부분에서는 왠지 자신이 없습니다. 알고는 있는데, 과연 살아내고 있었는가 하는 질문이 듭니다.
- 야고보서는 초대 교회 성도들의 현실적 고난 속에서 기록된 실천적 서신입니다
- '이스테'는 명령이 아닌 직설법으로,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다시 촉구하는 표현입니다
-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의 갈등 순간에 드러납니다
듣기를 먼저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그날 저녁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밖에서 하루 종일 눈치를 보며 일하고 들어왔는데, 아내가 "집에 오면 좀 도와주지, 당신은 집안일에는 신경도 안 쓰네요"라고 했습니다. 순간 속에서 올라오는 말이 있었습니다. '내가 노는 것도 아니고, 가족 먹여살리려고 밖에서 얼마나 고생하는데.'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습니다.
보통 이런말을 듣게 되면 상대방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박할 말을 이미 머릿속에서 조립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속히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를 열어두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대방의 말 뒤에 있는 감정과 상황까지 함께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내는 저를 비난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날 하루가 너무 고됐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알아줬으면 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었다면, 대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입니다. 조금만 더 들어줬더라면 오해하지 않았을 일들이 실제로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그 경험 이후 절감했습니다. 출처: YouVersion 성경 (야고보서 1장)
말하기를 더디 한다는 것은 침묵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말하기를 더디 하라"는 구절을 보면 말을 천천히, 혹은 적게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그런데 원문의 맥락을 보면 뉘앙스가 다릅니다. 이것은 자기 의견만을 성급하게 내세우거나 논쟁에서 이기려는 충동을 제어하라는 뜻입니다. 말의 속도가 아니라 말의 충동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저는 그날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집안일하느라 많이 피곤했구나, 미안해 여보." 오랜 경험상 그리고 그동안의 말씀과 묵상으로 조금은 단련된 나의 말을 듣고는 아내가 침묵해버린 것입니다. 반박이나 다툼이 아니라 침묵. 좋은 의미의 침묵이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짧은 한마디가 아내가 원하던 인정과 공감을 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하나가 관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배웠습니다.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이 꼭 필요한가, 아니면 그냥 나를 방어하려는 말인가." 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방어적 언어 즉 상대를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내뱉는 이 말들이 대부분의 다툼으로 이어집니다.
분노절제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길인 이유
야고보서 1장 20절은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여기서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이 원하시고 인정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행위와 삶의 방식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분노에 휩쓸린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화를 느끼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제가 그날 느낀 서운함과 억울함도 자연스러운 감정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분노가 언어와 행동으로 표출될 때입니다. 감정의 격분상태, 즉 이성적 판단이 감정에 압도당한 상태에서는 상대를 설득하거나 바로잡으려 해도 오히려 상처와 분열만 남기게 됩니다.
저역시 과거에 비슷한 상황에서 화를 내며 "나도 힘든데 왜 나만 뭐라고 해?"라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대화는 두 사람 모두 더 지친 채로 끝났고, 며칠 동안 어색한 공기가 남았습니다. 분노로 상대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저의 경험으로는 거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출처: 대한성서공회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성경 한 구절 안에 담긴 삶의 지혜가 얼마나 깊은지 새삼 놀랍니다. 분노절제는 단순히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지혜롭게 기다리는 적극적인 행위라는 것을 이제는 알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화가 날 때 어떻게 하면 말하기를 더디 할 수 있나요?
A. 제가 직접 써봤는데, 가장 단순한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말이 나오려는 순간 심호흡을 한 번 하거나, 야고보서 1장 19절 같은 말씀 한 구절을 속으로 떠올리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3초만 참으라"는 조언이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 3초 안에 뭔가를 채워넣지 않으면 결국 말이 튀어나오더라고요. 말씀 한 구절이 그 공백을 채워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Q. 화를 전혀 안 내는 게 신앙적으로 옳은 건가요?
A. 화를 느끼는 감정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야고보서 본문도 화를 느끼지 말라고 하지 않고, 성내기를 더디 하라고 말합니다. 감정을 무조건 억압하는 것이 신앙의 성숙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감정을 인식하되 그것이 말과 행동으로 표출되는 방식을 다스리는 것이 더 정확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야고보서 1장 19절 묵상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A. 말씀 묵상은 구절 전체를 한꺼번에 소화하려 하기보다, 세 가지 권면(듣기, 말하기, 성내기) 중 하나를 골라 그날 하루 자신의 대화에 적용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한 구절도 깊이 읽으면 삶의 지혜가 달라진다는 것을 이 구절을 통해 체감했습니다. 말씀의 깊이는 묵상의 양에 비례한다고 느낍니다.
Q. 가까운 사이일수록 화를 더 많이 내게 되는 이유가 뭔가요?
A. 가까운 관계일수록 기대치가 높아지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실망이 분노로 전환되는 속도가 빠릅니다. 또한 오랜 사이일수록 "이 정도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전제가 쌓이는데, 그 전제가 어긋날 때 격한 반응이 나옵니다. 한마디의 말 실수가 긴 관계에 상처를 남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결론
야고보서 1장 19-20절은 두 절짜리 짧은 구절이지만, 부부 관계, 직장 동료 관계, 모든 인간관계에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앙이 성숙하면 화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들을 하지만 제 생각에는 실제로는 화가 올라오는 빈도보다 그 순간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 누군가의 말에 가슴이 뜨끔했거나, 이미 후회하는 말을 내뱉었다면 이 구절 하나를 손에 쥐고 하루를 다시 정리해보시길 권합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성내기도 더디 하는 것. 말씀 한 구절의 묵상이 얼마나 깊어지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을 여러분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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