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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묵상 그리고 삶

마음이 울쩍할때 : 시편 30편 5절 (저녁의 울음, 아침의 기쁨, 하나님의 은총)

마하나임220 2026. 9. 3. 16:04

목차


    다시 일으켜 세움 (인내)

    밤새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새벽에 겨우 눈을 감은 적이 있습니다. 풀리지 않는 관계의 문제, 아무리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긴 밤을 지나고 나면 어느 순간 아침이 와 있었습니다. 시편 30편 5절은 바로 그 경험을 먼저 살았던 다윗의 고백입니다.



    저녁의 울음 — 믿음이 있어도 눈물은 흐른다

    일반적으로 신앙이 깊으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알면 알수록 더욱더욱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기도를 드리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말씀을 붙잡으면서도 마음이 무너지는 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스스로를 탓했습니다. '믿음이 부족해서 이렇게 흔들리는 게 아닐까'라고요.

    그런데 시편 30편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심정을 가장 잘 이해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그 다윗도 사울에게 쫓겨 광야를 떠돌았고,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왕궁을 버리고 도망해야 했습니다. 그가 이 시편을 쓴 것은 바로 그 고난을 통과하고 나서입니다. 즉, 이 고백은 어려움을 몰라서 나온 말이 아니라, 누구보다 깊은 고통을 겪은 자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요한복음 11장 35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는 성경에서 가장 짧은 절 중 하나이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 자체가 믿음 없음의 증거가 아니라는 것, 그것을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 주신 셈입니다.

    저 역시  고난 중에 흔들리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억지로 괜찮은 척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 태도가 오히려 더 오래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지금 너무 힘듭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뭔가 달라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저녁"이란 단순히 하루 중 밤 시간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녁"은 고난과 어둠의 시간을 상징하는 문학적 표현입니다. 히브리 시문학이란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 시가서 특유의 대칭 구조와 상징 언어를 활용하는 표현 방식을 말하며, 시편 전체가 이 형식을 따릅니다. 그러니 "저녁의 울음"은 특정 한 날 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의 어두운 계절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 믿음이 있어도 눈물과 흔들림은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 다윗의 고백은 고통을 모르는 자의 말이 아닌, 고난을 통과한 자의 말입니다
    • 억지로 괜찮은 척하기보다 솔직하게 내려놓는 것이 먼저입니다
    • "저녁"은 히브리 시문학에서 인생의 고난의 계절을 상징합니다
    요약: 믿음이 있어도 눈물은 흐를 수 있으며, 그 솔직한 고백이 오히려 회복의 시작입니다.

     

    아침의 기쁨과 하나님의 은총 — 노염은 잠깐, 은총은 평생

    "고난 뒤엔 반드시 좋은 일이 온다"는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이 말이 위로처럼 쓰이지만, 제 경험상 그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될 때가 있습니다. 언제 좋아지는 지도 모르고,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막연한 낙관은 공허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희망고문이 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시편 30편 5절이 다른 이유는, 단순한 낙관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신학적 선언이라는 점입니다. 신학적이라는 말은 여기서 거창한 뜻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고백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이 심판보다 은혜 쪽에 무게가 기울어져 있다는 고백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고난이 찾아오면 '내가 뭘 잘못했나'부터 생각했습니다. 물론 자기 성찰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고난의 모든 원인을 자신의 죄에서 찾는 것은 욥기가 정면으로 반박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욥기는 의인도 고난을 당할 수 있으며 그 고난이 반드시 죄의 결과가 아님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아침"이 반드시 내가 원하는 방식과 시간에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제 경우에는 이것을 아는 게 큰 깨달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도하면 즉시 상황이 바뀔 것을 기대했다가 그렇지 않을 때 더 깊이 낙담한 적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게 아니라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이미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감사가 일어났던 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방식이 아닌 절대자로서의 주권자로서의 역사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음 장면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 그것이 섭리의 핵심입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신앙 선조들이 이 섭리의 경험을 고백해 왔으며, 한국교회도 박해와 고난의 역사 속에서 같은 고백을 반복해 왔습니다(출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제가 결국 붙들게 된 것은 하나의 단순한 사실이었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아무리 어두워도, 그것이 하나님이 써 내려가시는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는 아니라는 것. 지금이 "저녁"이라면,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아침은 어떠한 형태로든 꼭 옵니다. 

    요약: 하나님의 은총은 고난보다 길고, 섭리 안에서 아침은 반드시 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기도해도 상황이 안 바뀌면 하나님이 안 듣고 계신 건가요?

    A. 기도에 즉각 반응이 없으면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기도 응답을 상황 변화로만 보는 경우가 많은데, 제 경험상 상황보다 사람이 먼저 변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내 기대의 방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미 작동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Q. 시편 30편은 어떤 상황에서 쓴 글인가요?

    A. 시편 30편은 다윗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깊은 고난에서 건지신 것을 감사하며 드린 찬양 시편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추격, 압살롬의 반역 등 수많은 "저녁의 시간"을 지났으며, 그 경험들을 통과하고 나서야 이 고백을 남겼습니다. 즉, 고통을 몰라서 쓴 글이 아닙니다.

     

    Q. 신앙인이 우는 게 믿음이 약한 증거 아닌가요?

    A.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반대라고 봅니다. 예수님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고, 시편의 많은 부분이 탄식과 울부짖음으로 가득합니다. 눈물은 믿음의 부족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서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Q. "아침의 기쁨"이 현실에서도 실제로 오나요?

    A. 기쁨이 오는 방식이 처음 기대했던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하던 결과가 주어지기보다, 같은 상황에서도 평안을 경험하거나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외적 조건이 아닌 내면에서 먼저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론

    지금 "저녁"을 지나고 있다면,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오해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도 솔직하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고백을 다시 읽으면서, 그가 "울음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지 않고 "울음이 깃들일지라도"라고 쓴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늘의 어둠은 하나님이 쓰시는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이 아닙니다. 지금 이 밤이 아무리 길게 느껴져도, 하나님의 은총은 그 노염보다, 그 고난보다, 그 눈물보다 훨씬 오래갑니다. 지금 당장 아침이 보이지 않더라도, 오늘 하루를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 그것으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