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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으켜 세우다(하나님 섭리)
열심히 달렸는데 왜 저 사람이 먼저 도착했을까요? 저도 한때 이 질문을 꽤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전도서 9장 11절은 그 답을 "실력 부족"에서 찾지 말라고 말합니다. 시기와 기회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한다는 것, 그리고 그 영역을 주관하시는 분이 따로 계신다는 것이 이 말씀의 핵심입니다.
시기와 기회 — "빠른 사람이 이긴다"는 공식이 깨지는 순간
달리기를 잘하면 당연히 먼저 들어온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저도 오래 그렇게 믿었습니다. 열심히 준비하면 결과가 따라온다는 공식, 그것이 세상의 기본 작동 방식이라고 여겼습니다.
전도서는 인생을 오랫동안 관찰한 지혜자가 기록한 책입니다. 여기서 전도서란 히브리어 '코헬렛', 즉 '모임을 이끄는 자', '지혜를 전하는 자'라는 뜻에서 비롯된 명칭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인생의 정상에서 모든 것을 경험한 뒤,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9장 11절에서 전도자는 빠른 경주자, 용사, 지혜자, 명철자, 지식인을 나열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성공할 것이라고 당연하게 여겼던 부류들입니다. 그런데 전도자는 그들이 반드시 선착하거나 승리하거나 풍요를 얻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히브리어 원어를 살펴보면 흥미롭습니다. '시기'에 해당하는 원어 '에트(עֵת)'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정해진 '때'를 가리킵니다. '기회'에 해당하는 '페가(פֶגַע)'는 사람이 예측할 수 없이 갑자기 맞닥뜨리는 사건이나 만남을 가리킵니다. 즉, 이 두 단어가 함께 쓰인다는 것은 인생의 결과가 오직 개인의 역량에만 달려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어떤 일을 오래 준비했는데, 정작 결과는 제가 기대한 시점과 전혀 다른 때에 나타났습니다. 그때는 실패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오히려 그 지연이 저에게 필요한 성숙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에트(עֵת): 하나님의 섭리로 정해진 '때', 단순한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담긴 시점
- 페가(פֶגַע): 사람이 예측할 수 없이 맞닥뜨리는 기회 또는 사건
- 전도서의 핵심 주제: 인생의 결과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섭리 — "내 통제 밖"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다
그럼 노력은 의미 없다는 말인가?, 빠르게 하는 것은 필요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입니다. 노력을 폄하하는 것처럼 읽힐 수 있는 이 말씀이 오히려 노력을 전제로 한다는 것,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말합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여기서 핵심은 인간의 '율법적 행위'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율법적 행위란 자신의 노력과 공로에만 기대는 태도를 말합니다. 전도서가 말하는 논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결국에 제가 생각했을때 "노력하면 된다"는 말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믿을 때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열심히 준비한 일이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때, 처음에는 "내가 부족했나"라는 자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결과를 빗나가게 만든 변수들, 즉 건강, 인간관계, 외부 환경은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조율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흔히들 이런 것을 값진 경험이란 표현을 하곤 합니다.
전도서가 말하는 것은 결과를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결과에 대한 집착과 자기 능력에 대한 과신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하나님 경외가 들어온다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삶의 적용 — 비교 대신 오늘의 충실함으로
두 사람이 똑같이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실력도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시험 당일 자신이 집중적으로 복습한 유형이 집중적으로 출제됐고, 다른 사람은 당일 아침 예상치 못한 가족 사정이 생겼습니다. 결과는 크게 갈렸습니다. 그렇다고 결과가 좋지 않은 쪽이 더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살다보면 이런 순간을 수도 없이 겪습니다. 그 순간에는 너무 쉽게 자신을 탓하게 됩니다. "내가 더 했어야 했는데"라는 자책이 먼저 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상황을 복기해 보면, 제가 통제할 수 없었던 변수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것까지 자기 책임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던 일이 뜻밖의 기회로 연결된 경험도 있습니다. 준비는 했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열렸을 때, 저는 이것을 단순한 '운'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내가 보지 못하는 시간표가 있다는 쪽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말씀을 삶에 적용할 때
첫째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즉 오늘의 준비와 충실함입니다.
둘째는 내가 할 수 없는 영역, 즉 때와 기회의 도래입니다.
전자는 제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고, 후자는 하나님께 맡겨야 할 부분입니다. 이것을 혼동하면 지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까지 통제하려 하거나, 반대로 내가 해야 할 것까지 포기하는 양극단이 모두 생깁니다.
"남보다 늦어 보인다"는 느낌이 들 때 저는 이렇게 생각을 전환합니다. 빠른 사람이 반드시 먼저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금 이 자리에서 오늘 할 일을 충실히 하는 것, 그것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전부이기도 하고, 동시에 가장 중요한 전부이기도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전도서 9장 11절이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뜻인가요?
A. 그렇게 읽히는 분들도 있는데, 저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이 말씀은 노력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노력만으로 모든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Q. 시기와 기회가 모두에게 임한다면 왜 어떤 사람은 계속 기회를 얻는 것처럼 보이나요?
A. 제 경험상 이것은 준비된 사람이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회 자체는 누구에게나 임하지만, 그것을 알아보고 붙드는 것은 평소의 준비와 연결됩니다.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준비가 맞닿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저는 봅니다.
Q.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면 결국 숙명론과 다를 게 없지 않나요?
A. 숙명론은 인간의 의지와 행동이 무의미하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반면 섭리 신앙은 인간의 노력과 선택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입장입니다. 제가 경험한 것도 그랬습니다.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없는 것까지 붙들고 소진되지 말라는 방향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건강합니다.
Q. 남들보다 늦는 것 같을 때 어떻게 마음을 다잡으면 좋을까요?
A. 저는 비교 자체의 기준점을 바꾸는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저 사람은 벌써 저기 있는데"가 아니라 "나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로 질문을 바꾸는 것입니다. 빠른 사람이 반드시 먼저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것, 전도서가 이미 수천 년 전에 확인해 준 사실입니다.
결론
전도서 9장 11절은 위로의 말씀이기도 하고, 동시에 성찰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정리했습니다. 결과를 오직 내 능력의 합산으로만 해석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렇다고 오늘의 충실함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늦어 보인다면, 그것이 영원히 늦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때와 기회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기다리는 동안 어떻게 살아갈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그 선택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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