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신앙의 초창기에 저는 모든 상황은 하나님 주관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직장에서 관계가 틀어지고, 예상 못 한 일이 연달아 터지던 시기에 "왜 하나님은 나를 이런 자리에 두셨을까"라는 말이 기도보다 먼저 나왔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1장 13절을 보고 하나님이 시험을 하지 않으신다? 도데체 이건 또 무슨말인가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해 시험을 주신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혹의 출처 — 하나님에게 돌릴 수 없는 이유
야고보서 1장 13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 짧은 문장이 등장한 배경을 먼저 짚어야 이해가 깊어집니다.
야고보서는 디아스포라(Diaspora), 즉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아가던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여기서 디아스포라란 원지 자신의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로 흩어져 사는 그런 민족을 말합니다. 당시 성도들은 박해와 빈곤, 사회적 소외를 동시에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힘든 상황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서 말하는 시험과, 13절이 말하는 시험은 같은 단어처럼 보이지만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전자는 페이라스모스(peirasmos), 즉 믿음을 단련하는 시험으로 인내와 성숙으로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반면 13절부터의 맥락은 사람을 죄 쪽으로 끌어가는 유혹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제가 이 구분을 처음 제대로 이해했을 때, 그동안 제가 뒤섞어 쓰던 두 개념이 얼마나 달랐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악에 의해 유혹받으실 수 없는 분이고, 따라서 그분이 사람을 악으로 끌어가신다는 발상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 논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방어하는 것인 동시에, 우리에게 "그러면 유혹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다음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 야고보서의 수신자: 디아스포라 — 박해와 빈곤 속 흩어진 초대 교회 성도들
- 시련(페이라스모스)과 유혹(Temptation)은 같은 단어 안에서 다른 방향을 가리킴
-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악과의 본질적 분리를 의미하며, 유혹의 원천이 될 수 없음
- 14절의 욕심(Epithumia) — 내면의 욕망이 유혹의 실제 출발점
14절이 그 답을 줍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여기서 욕심으로 번역된 에피튀미아(Epithumia)는 단순한 탐욕만이 아니라 내면 깊이 자리 잡은 욕망 전반을 가리킵니다. 좋게 쓰이면 간절한 바람이 되고, 나쁘게 흐르면 죄의 씨앗이 되는 에너지입니다. 야고보는 유혹이 외부에서 덮쳐오기 전에 이미 내 안에 자라고 있던 무언가와 맞닿을 때 작동한다고 설명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저도 그랬습니다. 직장에서 누군가를 미워하게 됐던 건 그 사람 때문이기도 했지만, 제 안에 있던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이미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불씨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사실입니다(출처: YouVersion 성경 — 야고보서 1장).
책임 전가와 마음 점검 — 환경 탓을 멈춘 뒤 보이는 것
책임 전가는 심리학적으로도 아주 흔한 방어기제입니다. 방어기제란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이나 죄책감을 외부로 돌려 자아를 보호하려는 무의식적 반응입니다. 힘들 때 "하나님이 왜 이런 상황을 주셨나"라고 묻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저도 그런 질문을 아주 자주 던지곤 했습니다. 문제는 그 질문이 '책임의 도피처'로 굳어버릴 때입니다. 자기 탓이 아닌 하나님 탓으로 돌릴때 발생합니다.
야고보는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라"고 명령형으로 씁니다. 이 말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교정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대신 네 마음을 들여다봐라"는 적극적인 촉구입니다. 제 경우도 나의 탓보다는 환경을 탓하는 쪽이 훨씬 편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불쾌한 것들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동안 그런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본적이 있습니다. 마음속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억울함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 밑에는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자존심과, "이 상황이 빨리 끝나야 한다"는 조급함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환경이 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 환경에 반응하는 방식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 죄에 끌려가지 않고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표현이 저는 오랫동안 마음에 걸렸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그게 너무 교과서 같은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선택을 반복하다 보니, 그게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경험임을 알게 됐습니다. 환경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그 환경에 더 이상 내 마음을 빼앗겨 정신 못 차리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혹의 흐름을 끊는 실제적 출발점
야고보는 유혹의 진행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욕심이 생기고 → 그 욕심에 끌리며 → 미혹됨으로 이어져 → 죄가 잉태되는 구조입니다. 처음부터 거대한 죄가 눈앞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이미 있던 욕망이 특정 상황과 만나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마음 점검은 유혹이 완성되기 전 단계, 즉 '끌림'을 인식하는 시점에서 가장 효과적입니다. 저는 그 순간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멈출 수 있게 되고 또한 하나님께로 방향을 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야고보서 1장 13절에서 말하는 '시험'이 고난과 다른 건가요?
A. 같은 단어(페이라스모스)에서 나왔지만 문맥상 방향이 다릅니다. 1~4절의 시련은 믿음을 단련하는 과정으로 인내와 성숙으로 이어지는 반면, 13절부터의 유혹은 사람을 죄 쪽으로 끌어가는 유혹(Temptation)에 가깝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둘을 동일하게 보기도 하는데, 저는 이 구분을 인식하고 나서 본문이 훨씬 입체적으로 읽혔습니다.
Q.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게 죄인가요?
A. 야고보서는 원망의 감정 자체를 죄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시편에도 하나님께 솔직하게 토로하는 탄식 시편이 여럿 있고, 그것이 불신앙으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다만 야고보가 경계하는 것은 그 감정이 "하나님이 나를 죄에 빠지게 하셨다"는 책임 전가로 굳어질 때입니다. 솔직한 감정 표현과 책임 회피는 다릅니다.
Q. 마음을 점검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건가요?
A. 저는 단순하게 "이 상황에서 지금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억울함 아래에 인정 욕구가 있는지, 조급함 아래에 통제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들여다보는 겁니다. 거창한 방법이 아니라, 기도 중에 그 질문을 솔직하게 꺼내는 것으로도 충분히 시작이 됩니다.
Q. 야고보서가 강조하는 성화는 다른 성경 본문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A. 바울 서신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칭의, Justification)를 강조한다면, 야고보는 그 믿음이 삶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드러나는가(성화, Sanctification)에 집중합니다. 서로 모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두 서신이 충돌하는 것처럼 느꼈는데, 결국 방향이 다를 뿐 서로를 완성시키는 구조라고 보게 됐습니다.
결론
야고보서 1장 13절은 짧지만 꽤 불편한 말씀입니다. "하나님 탓 하지 말라"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도전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도전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자유를 가져왔습니다. 환경을 탓하는 한 그 환경의 포로로 머물게 되지만,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환경이 나를 결정하는 힘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유혹 앞에서 "내 욕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내려놓는 것, 이 두 가지가 야고보서 1장 13~14절이 실제적으로 요청하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다음번에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한 번만 더 들어가서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들여다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말씀과 묵상 그리고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나님 말씀 듣고 지키기 어떻게 하는거지? : 누가복음 11장28절(말씀묵상, 순종, 성령의 열매) (0) | 2026.09.08 |
|---|---|
| 부끄러운 고백 : 마태복음 7장 7절 (기도의 지속성, 닫힌 문, 하나님의 뜻) (0) | 2026.09.07 |
| 시험을 만났는데 기뻐하라고? : 야고보서 1장2-4절 (배경, 믿음의 시련, 인내) (0) | 2026.09.05 |
| 빠르면 좋은건가? : 전도서 9장11절 (시기와 기회, 하나님의 섭리, 삶의 적용) (0) | 2026.09.04 |
| 마음이 울쩍할때 : 시편 30편 5절 (저녁의 울음, 아침의 기쁨, 하나님의 은총) (0) | 2026.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