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신앙의 초창기 오랫동안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고통이 사라지는 것 또는 내가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었습기다. 기도가 응답된다는 건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이라고 당연하게 여겼던 거죠. 고린도후서 12:9 말씀을 다시 붙들고 앉았을 때, 제가 얼마나 좁은 틀로 은혜를 정의하고 있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세 번이나 간구했음에도 고통이 떠나지 않은 이 본문은, 응답의 방식이 우리 생각과는 다른 차원의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바울이 처한 맥락 — 세 번의 간구가 남긴 질문고린도후서 12장은 바울 서신 중에서도 꽤 개인적인 내용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경험한 영적 계시(啓示)를 이야기하다가, 곧바로 자신을 괴롭히는 "육체의 가시"로 화제를 전환합니다. 여기서 계시란 하나님이 특정 ..
한참 바쁠때는 계획을 세워놓고 빈틈없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고는 조금이라도 시간이 있다면 이것 저것 다 할수 있을텐데 하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주어지면 조금만 쉬다가 하지 또는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어슬렁 거리기 일수 입니다. 참 이상하죠 그리고는 내일부터 또는 다음주부터 또는 다음달부터 라고 미루곤 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보면 시간이 다 지가가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계획만 세우다가 두달을 통째로 흘려보낸 적이 있습니다. 잠언 13장 4절은 그때 제 모습을 정확하게 짚어낸 말씀이었습니다. "원하기는 하되 움직이지 않는 삶"과 "작게라도 꾸준히 움직이는 삶"의 차이가 결국 얼마나 벌어지는지 함께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게으름 — 소원은 있는데 현실은 그대로인 이유직접 겪어보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1). 신앙 초창기부터 이 구절은 저에게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말씀 중 하나였습니다. 주석서를 뒤지고 설교를 수십 번 들어도 뭔가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할 뿐 가슴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휘포스타시스 — '실상'이라는 단어가 품은 뜻일반적으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면,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이루어진 상태를 믿음으로 붙잡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원어를 파고들어 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실상'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휘포스타시스(hypostasis)입니다. 여기서 휘포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