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는 누가복음 11장 28절 말씀, 신앙 초기에는 "당연한 말씀 아닌가" 하고 쉽게 넘겼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연수가 쌓일수록 이 짧은 한 문장이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말씀을 듣고 어떤것을 지킨다는 것인가? 정말 막연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아는 것'과 '듣는 것'이 같은 의미 일까요. 제가 느끼기에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습니다.말씀묵상: '아는 것'과 '듣는 것'은 다릅니다일반적으로 성경을 많이 읽으면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믿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28절의 배경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직후 한 여인이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꽤 오랫동안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기도해 왔습니다.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면 들어주신다는 뜻으로만 이해했거든요. 그런데 기도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 시간이 쌓이면서, 이 말씀이 단순한 기도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배우게 됐습니다.기도의 지속성 — 멈추지 않는 것 자체가 믿음입니다마태복음 7장 7절은 예수님의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 가운데 마지막 단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이란 마태복음 5~7장에 걸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방식을 가르치신 설교로, 당시 유대교 율법 해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윤리를 제시한 내용입니다.이 절에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세 단어가 원어 헬라어 기준으..
신앙의 초창기에 저는 모든 상황은 하나님 주관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직장에서 관계가 틀어지고, 예상 못 한 일이 연달아 터지던 시기에 "왜 하나님은 나를 이런 자리에 두셨을까"라는 말이 기도보다 먼저 나왔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1장 13절을 보고 하나님이 시험을 하지 않으신다? 도데체 이건 또 무슨말인가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해 시험을 주신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혹의 출처 — 하나님에게 돌릴 수 없는 이유야고보서 1장 13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 짧은 문장이 등장한 배경을 먼저 짚어야 이해가 깊어집니다.야고보서는 디아스포라(Diaspora), 즉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아가던 초대 교회..
따르는 삶 (시험)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했는데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때, 저도 한동안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야고보서 1장 2-4절을 다시 붙들었을 때, 시험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고난을 피하는 법이 아니라, 고난을 통과하는 법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흩어진 성도들에게 쓴 편지 — 배경야고보서는 '디아스포라(Diaspora)'를 향해 쓰인 편지입니다. 디아스포라란 고향을 떠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아가는 유대인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로, 여기서는 박해를 피해 뿔뿔이 흩어진 초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당시 성도들은 믿음 때문에 사회적 냉대를 받았고, 경제적 어려움과 공동체 내 갈등까지 겹쳐 있었습니다.그래서 야고보는 "힘내라"는 말 대신 ..
다시 일으켜 세우다(하나님 섭리)열심히 달렸는데 왜 저 사람이 먼저 도착했을까요? 저도 한때 이 질문을 꽤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전도서 9장 11절은 그 답을 "실력 부족"에서 찾지 말라고 말합니다. 시기와 기회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한다는 것, 그리고 그 영역을 주관하시는 분이 따로 계신다는 것이 이 말씀의 핵심입니다.시기와 기회 — "빠른 사람이 이긴다"는 공식이 깨지는 순간달리기를 잘하면 당연히 먼저 들어온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저도 오래 그렇게 믿었습니다. 열심히 준비하면 결과가 따라온다는 공식, 그것이 세상의 기본 작동 방식이라고 여겼습니다.전도서는 인생을 오랫동안 관찰한 지혜자가 기록한 책입니다. 여기서 전도서란 히브리어 '코헬렛', 즉 '모임을 이끄는 자', '지혜를 전하..
다시 일으켜 세움 (인내)밤새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새벽에 겨우 눈을 감은 적이 있습니다. 풀리지 않는 관계의 문제, 아무리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긴 밤을 지나고 나면 어느 순간 아침이 와 있었습니다. 시편 30편 5절은 바로 그 경험을 먼저 살았던 다윗의 고백입니다.저녁의 울음 — 믿음이 있어도 눈물은 흐른다일반적으로 신앙이 깊으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알면 알수록 더욱더욱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기도를 드리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말씀을 붙잡으면서도 마음이 무너지는 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스스로를 탓했습니다. '믿음이..
따르는 삶(더디함)퇴근 후 소파에 쓰러지고 싶었던 날, 아내의 한마디에 순간 가슴이 확 올라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순간적으로 말을 내뱉지 않고 기도하고 성경말씀을 떠올렸는데 이제 보니 그것이 야고보서 1장 19-20절 말씀 이었습니다. 아마 참지 못했더라면 분명 후회할 말을 내뱉었을 것입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와 성내기는 더디 하라는 이 짧은 한 구절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참아야 한다"고 알지만, 막상 그 순간은 다릅니다신앙생활을 하면서 "분노를 다스려야 한다"는 말은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어왔습니다. 설교 시간마다, 큐티 교재마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믿음이 깊어질수록 화가 잘 나지 않는가 하면, 제..
무너졌던 그자리 (참음)새로운 일을 시작했을 때, 처음 몇 주는 기대감으로 버팁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진전이 보이지 않으면 그 기대감이 슬그머니 짐으로 바뀝니다. 저도 지금 그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 말씀을 붙들면서도 솔직히 "이게 정말 되긴 되는 건가" 하는 의심이 먼저 치고 올라오는 게 사실입니다. 낙심이 찾아오는 맥락 — 바울이 이 말씀을 쓴 이유일반적으로 갈라디아서 하면 '이신칭의(以信稱義)'를 떠올립니다. 여기서 이신칭의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교리로, 바울 신학의 중심 개념입니다. 그런데 6장까지 읽어 내려오면 바울이 교리만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는 지극히 현실적인 공동체 문제, 즉 서로의 짐을 지고 선을 행하다가 지쳐버리는 사람들을 ..
따르는 삶 (평안)이력서를 넣고 연락을 기다리던 그 시간, 저는 분명 "평안을 주신다"는 말씀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합격 통보가 오기 전까지는 그 평안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4:27이 말하는 평안은 과연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그 안도감과 같은 것일까요?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세상의 평안과 예수님의 평안은 어디서 갈라지는가오랫동안 수학강사로 일하다가 그 자리를 내려놓았을 때, 저는 처음으로 "평안"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들여다봤습니다. 이력서를 여러 곳에 넣고 연락을 기다리던 몇 주 동안, 기도도 했고 말씀도 읽었습니다. 그런데 연락이 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계산이 돌아갔습니다. 이번 달 생활비는 어떻게 되는지, 이 나..
하나님을 믿으면 고난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한때 그렇게 믿었습니다. 믿고 기도도하고 예배도 참석하는데 왜 달라지는 것이 없냐고. 그런데 이사야 43장 2절을 다시 읽었을 때,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 가운데를 지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함께하심 — 고난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혼자가 아닌 것신앙생활을 시작하면 어려움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일반적으로 "믿음이 강하면 시련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하지만 그건 오해입니다. 저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어려움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이사야 43장 2절의 배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